조선왕조실록은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역사 기록물 중 하나로, 단순한 역사 기록을 넘어서는 데이터 행정의 선구적 사례였다. 조선은 왕의 언행과 국가 정책을 기록하는 춘추관을 운영하였고, 이를 사고(史庫)라는 분산 저장소에 보관하여 데이터의 영속성과 신뢰성을 보장하였다. 사관(史官)의 기록은 독립적으로 유지되었으며, 왕조의 명령조차도 실록의 수정을 허락하지 않는 엄격한 데이터 관리 원칙이 적용되었다. 이러한 조선의 데이터 관리 체계는 현대적인 데이터 주권 개념과 놀라운 유사성을 보인다.
오늘날 AI 시대에 데이터는 가장 강력한 자산이며, 각국은 데이터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한국은 조선왕조실록이 보여준 데이터 관리의 철학과 시스템적 저력을 바탕으로 AI 시대의 데이터 패권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조선의 실록 시스템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왕권을 견제하고 정책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행정 데이터베이스 역할을 했듯이, 현대의 데이터 전략 역시 단순한 저장을 넘어 독립적이고 투명한 데이터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첫째, 한국은 AI 시대의 데이터 주권을 확립하기 위해 데이터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보장해야 한다. 조선이 사관을 통해 데이터 기록의 자율성을 유지했던 것처럼, 데이터의 소유권과 관리 주체를 국가 또는 공공기관이 확실하게 설정해야 한다. 해외 빅테크 기업이 데이터를 독점하는 시대에, 한국이 자체적인 데이터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신뢰할 수 있는 AI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것은 필수적인 과제다.
둘째, 조선의 사고 시스템처럼, 한국은 데이터의 보존과 안정성을 강화하는 분산형 데이터 저장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블록체인과 같은 기술을 활용하여 데이터 위변조를 방지하고, 공공 데이터의 장기적 보존을 위한 클라우드 및 분산 서버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AI가 학습할 데이터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 역사적 기록물뿐만 아니라, 행정·경제·의료·산업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체계화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데이터 표준화 작업을 추진해야 한다.
셋째, 조선이 실록을 통해 왕권을 견제하고 정책 평가의 도구로 활용했듯이, 현대 AI 시대에도 데이터 기반의 정책 평가 시스템이 필요하다. AI는 단순한 의사결정 보조 도구가 아니라,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하고 피드백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은 AI 기반의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고, 데이터 분석 결과를 활용하여 실시간으로 정책을 개선할 수 있는 데이터 주도 행정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조선의 데이터 관리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국가의 정체성과 역사적 정당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던 것처럼, AI 시대의 데이터 전략 역시 한국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재 글로벌 데이터 시장에서 한국의 데이터가 단순히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데이터 철학과 AI 윤리 기준을 반영한 독자적인 데이터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한국은 AI 시대의 데이터 패권을 주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의 데이터 행정이 단순한 역사적 유산이 아니라, AI 시대의 데이터 패권 전략을 위한 중요한 교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조선이 실록을 통해 왕권을 견제하고 정책의 지속성을 유지했듯이, 한국은 AI 시대의 데이터 관리 체계를 투명하고 독립적으로 운영하며, 데이터 주권을 확보하는 전략을 펼쳐야 한다. 데이터가 권력인 시대에, 조선의 데이터 행정 철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은 한국이 데이터 패권을 선점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박항준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누림경제발전연구원장
반려가족누림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디케이닥터 대표이사
기술거래사/기업기술가치평가사
공)저서. 더마켓TheMarket / 스타트업 패러독스 / 크립토경제의 미래
좌충우돌 청년창업 / 블록체인 디파이혁명 / CEO의 인생서재
/ 이노비즈 CEO독서클럽 선정도서 21選 (사회관 편) (세계관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