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레오로스란 고대 로마의 삼두전차(Triga)에서 멍에를 하지 않는 한 마리를 가리킨다. 파레오로스가 멍에를 메지 않는 이유는 전차의 방향 전환과 속도를 조율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이 말을 파레오로스(Pareoros) 혹은 아웃러너(Outrunner)라고 한다. 그는 멍에에 묶이지 않은 유일한 존재로서 자유롭게 달리면서도 전체의 균형과 궤적을 조율한다. 겉으로 보기에 힘을 내는 것은 중앙의 두 말이지만, 실제로 마차의 방향을 바꾸고 흐름을 조절하는 것은 파레오로스의 몫이었다. 이 때문에 고대 로마와 그리스는 파레오로스를 지도자의 상징으로 삼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절반의 해석에 불과하다. 파레오로스는 멍에에서 자유롭지만, 그를 이끄는 기수가 분명 존재한다. 고삐와 채찍을 쥔 이는 따로 있고, 목표와 최종 방향을 정하는 주체 역시 기수다. 그렇다면 파레오로스를 전통적 의미의 지도자라 부르기는 어렵다. 그는 리더도 아니고 단순한 일꾼도 아니다. 파레오로스는 리더와 일꾼 사이의 제3의 영역에 존재하는 독특한 힘을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파레오로스를 통해 새로운 리더십을 정의할 수 있다. 그것은 매개적 리더십(Mediated Leadership), 혹은 연결적 리더십(Connective Leadership)이다. 파레오로스는 스스로 목표를 세우지 않지만, 그 목표가 제대로 구현되도록 세부 조율을 맡는다. 명령과 힘 사이를 매개하며, 전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균형과 속도를 조절한다. 권한을 가지지 않으면서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리더십, 이것이 파레오로스의 진정한 의미다.
파레오로스는 자유와 제약 사이의 긴장 속에 서 있다. 스스로 구속되지 않지만, 전체의 성과는 오히려 그에게 달려 있다. 이 역설이야말로 파레오로스가 고대인들에게 지도자의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었던 이유다. 그것은 권위나 힘의 리더십이 아니라 균형을 잡고 흐름을 바꾸는 제3의 리더십이었다.
오늘날의 사회와 조직도 마찬가지다. 리더가 목표를 세우고 다수가 질서와 무게 중심을 유지한다면, 조직을 움직이는 결정적 힘은 오히려 그 틀에 매이지 않은 파레오로스의 자리에서 나온다. 그는 기수의 권위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고정된 길 위에 균열을 내어 미래를 준비한다. 중앙이 아닌 옆에서 달리기에 긴장을 조율하고 균형을 유지하며, 자유로움 속에서 창조와 가능성을 열어 준다.
혹 지금 당신의 조직이 훌륭한 리더가 있음에도 위기를 맞고 있는가? 그렇다면 가장 먼저 조직 안에 파레오로스 같은 아웃러너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살펴야 한다. 위기의 조직에는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다.
첫째, 리더는 있으나 파레오로스가 부재한 조직이다. 리더의 권위와 명령은 있으나 이를 현실에서 조율해 줄 매개자가 없어 쉽게 경직된다. 리더의 외침이 일꾼들에게 끝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동맥경화가 오듯 조직이 한 몸처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조직이다.
둘째, 리더가 파레오로스에게 부여한 그간의 자율성을 방종으로 오해하거나 시기하여 멍에를 다시 씌운 조직이다. 왕조시대 몇몇 국왕들이 자신의 신하들을 시기하면서 나라를 어지럽게 한 사례로 자율이 사라진 파레오로스는 창조적 방향 전환의 가능성을 잃고, 조직은 힘으로만 움직이려 하다 에너지가 소진된다. 기수의 명령대로 방향을 바꿀 존재가 부재한 조직은 곧 경직되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며, 결국 무너지게 된다.
셋째, 리더가 파레오로스 역할에 만족하는 조직이다. 유행처럼 번지던 섬김의 리더십이나 서번트 리더십이 사라진 이유는 리더가 스스로 파레오로스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조직의 권위와 의사결정 시스템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매개자 역할을 하고 있어도 최종 목표와 궤적을 정할 리더십이 부족함으로, 조직은 방향을 잃고 분산된다. 재임 기간 중 존경은 받았으나 대통령은 어울리지 않았다고 평가받는 전임 대통령이 있다면 대통령 본인이 조직의 기수가 아닌 파레오로스의 역할에 만족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국가와 사회, 정당과 종교, 기업과 공동체에서 제3의 리더십이라 할 수 있는 파레오로스 부재로 위기로 이어지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목도해왔다. 파레오로스의 매개적 리더십은 오늘의 초개인이 모여있고, 역할 분담이 세분화된 조직에 던지는 위기 극복의 메시지다. 리더와 일꾼만으로는 조직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멍에 없는 자유로움 속에서 달리며 균형을 잡는 제3의 힘, 바로 파레오로스 같은 존재가 있을 때 조직은 미래를 향해 살아 움직일 수 있다.
박항준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누림경제발전연구원장
디케이닥터 대표이사
반려가족누림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기술거래사/기업기술가치평가사
공)저서. 더마켓TheMarket / 스타트업 패러독스 / 크립토경제의 미래
좌충우돌 청년창업 / 블록체인 디파이혁명 / CEO의 인생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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