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경제 하에서 우리는 사회구조상 소비자가에서 70%에 달하는 추가 비용을 금융과 서비스에 지불하면서 살고 있다. 10,000원짜리 식사를 하면서 우리가 우리의 일자리라고 알고, 사회의 일부분이라고 배우며 순응하고 지급하고 있는 비용이 7,000원에 달하는 것이다. 홈쇼핑에서 구매한 제품 가격의 50%는 에이전트나 쇼핑몰의 수익으로 지불되고, 백화점에서 구매한 제품 가격의 40%는 백화점이, 30%는 판매상과 중개인들에게 내주고 있다.
만일 우리가 30만 원짜리 의류를 하나 백화점에서 사면서 혹 각 파트별로 비용을 분리해서 지불하게 된다면 원단업체에 지불하는 돈은 단돈 3만 원정도가 된다. 우리는 지리적 이유나 산업적 특성에 의해 유통단계의 복잡함은 당연한 것으로 , 우리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유통 비용은 편익의 대가라, 과한 이윤은 브랜드 가치로 지급해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래서 순수 원가 3만 원짜리 제품을 30만 원에 구매하고 산다. 그 부담으로 우리의 삶은 헉헉대게 되는대도 말이다.
우리는 경기가 좋지 않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생활 물가가 오른 것에 민감하지만 이상하리만큼 명품 옷이나 전자제품 가격을 지불하는 데에는 순응하고 산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하지 않으니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
200년 후 역사 속에서 후손들을 우리를 디지털 노예 계층 즉, ‘디지털 슬레이브’라 부르게 될 것이다. 아마 농업혁명으로 탄생한 농노나 공업혁명으로 탄생한 블루칼라도 그들이 노예나 피착취 계층이었다는 것을 당시에는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우리의 삶을 파괴되고, 중산층을 몰락시키는 주범을 브랜드, 가치, 로열티라는 경제학적 눈속임으로 속이고, 관망했다면 이는 범죄요, 모르는 척했다면 또한 삶에 있어 우리도 배임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오히려 우리가 기술과 자본에 종속되는 새로운 노예 계층인 디지털 슬레이브로부터 탈피하려면 기존의 경제학, 기존의 금융, 기존의 삶의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도전이 될 것이다.
크립토 비즈니스들이 여러 부족한 부분으로 어느 누구도 크립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