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미스터 초밥왕이 그렇게 좋아?

by 대니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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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사 주실 수 있어요?”

아들이 물었다. 얼마나 보고 싶고 가지고 싶었으면 시험 끝나자마자 말을 꺼냈을까. 조심스레 묻는 아들을 보니 마음이 짠해졌다. 몇 해 전 중학생이었던 아이 하나가 온종일 끼고 있어 내다 버렸던 만화책 이야기였다. 물론 나도 그 만화책을 좋아했었지만, 공부를 위해 아쉬운 마음을 접었던 기억이 났다.

“Why not?”

아들에게 웃으면서 대답하고 바로 주문했다. 마지막 면접이 끝나고, 도착했던 만화책을 아들 앞에 내놓았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이토록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활짝 핀 자식 모습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마음 한편에 뒤섞여 올라왔다.

“아들아, 빨리 보고 아빠한테 넘겨라!”

웃으며 제 방에 들어가는 녀석을 보면서 딱 저 나이 때 내가 떠올랐다.


학력고사가 끝나고 성적표를 받은 후였다. 가고 싶은 대학에 원서 쓸 때까지 시간이 있어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반장이었던 나는 반 아이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한사람에 50원 또는 100원을 내고 학교 앞 엄지 만화방에서 만화책을 빌려 오는 것이었다. 대부분 흔쾌히 동의했다. 한 반에 학생이 60명 정도였기에 한 편에 열 권 정도 되는 만화책 대여섯 세트를 빌려볼 수 있었다. 책을 빨리 읽는 편인 나는 제일 먼저 볼 수 있었고 방학하기 전 한 달 동안 만화방의 엔간히 재미있는 책들은 모두 읽을 수 있었다. 그때의 방대한 독서 - 독서라고까진 할 순 없어도 - 덕분에 나름 재미있는 상상 주머니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고3 끝자락을 보내고 집을 떠나 서울로 올라갔다.

만화책 펼쳐놓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그때의 나와 어쩜 그리 똑같은지. ‘씨도둑은 못 한다’라는 옛말이 틀린 게 하나 없었다. 나도 한 권 펼쳐 들었다. 일본 홋카이도 오타루. 기울어가는 아버지의 초밥집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도쿄로 초밥 수업을 떠난 16세 소년 쇼타의 성장기를 그린 『미스터 초밥왕』. 매 편 훼방꾼의 끈질긴 방해 작전에도 미션을 성공시키며 어엿한 초밥 요리사로 성장하는 과정은 유명 무협 영화의 주인공을 보는 것 같았다. 초밥이면 사족을 못 쓰는 아들이 좋아할 만했다. 내가 시험 치른 것도 아닌데 아들만큼 신나서 만화책을 넘겼다. 학력고사가 끝난 그때의 나로 돌아간 듯했다.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에서 신선한 재료를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울고 있는 동료의 어머니를 위해 마음이 담긴 초밥을 만들어 내는 16세 소년을 보면서 잊고 있었던 삶의 방향과 의지를 돌아볼 수 있었다. 재료도 물론 중요하지만, 먹는 이의 건강과 상황에 맞춰 초밥을 내놓아야 한다는 스승의 말에 나도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만화 한 편에 감동하다니. 갱년기 감성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열 몇 권을 옆에 쌓아놓고 다음 편을 읽기 시작했다. 얼마나 읽었을까? 열일곱 소년의 대사에 잠시 멈칫했다. 초밥 요리사가 적성에 맞는지 묻는 후배의 말에 쇼타는 이렇게 대답했다.

“적성에 맞고 안 맞고보다, 그 사람의 노력으로 결정되는 일인걸….”

생강 초절임 만드는 것을 허드렛일이라 생각하며 좌절한 어린 후배에게 다른 선배 요리사는 그 일에 의미를 부여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일이 세상에서 제일 초라하게 생각될 때가 있어…. 하지만 어떤 일이든 그 일이 없어서는 안 되는 거야.”

아직 책장을 다 넘기진 못했지만, 이 만화의 작가는 초밥 만드는 과정은 배를 채워 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의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 나가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한참 동안 그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문득 내 아들은 이 장면에서 무엇을 느꼈을지 궁금해졌다. 방문을 살짝 열고 보았더니 어엿한 청년 하나가 미소를 띤 채 만화책을 넘기고 있었다. 저 만화를 다 보고 나면 어린 내 아들도 그때의 나처럼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내딛겠지. 만화 속 주인공처럼 그도 시련 앞에서 한 뼘씩 성장하는 청춘이길 기원하며 미소 띤 아들 얼굴을 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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