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기숙사에 데려다주고 경주박물관에 들렀다. 그곳에서 만난 금령총. 금으로 만든 방울이 출토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금빛 방울을 허리춤에 단 아이 하나가 멀리 떠나고 남아 있던 부모는 슬퍼하다가 사라지는 동영상은 금령총의 의미를 또렷하게 보여주었다. 아픈 여운을 마음에 담고 전시관을 둘러보다 입구에 전시된 국보 91호 기마인물형 토기를 만났다. 엑스레이 검사에서 술이나 물을 담는 주전자로 확인된 토기다. 신라의 생활 양식을 아는 데도 중요한 단서가 되었지만, 또 다른 역사적 장치가 하나 더 있었다. 말 뒤 등에 실린 일종의 솥단지인 ‘동복’이 그것이다. 흉노 등 북방유목민의 상징이기도 한 그것이 신라의 무덤에서 발견된 것이다.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30대 문무왕의 묘지명에 자신은 흉노 김일제의 후손이라는 기록을 남긴 것을 보면 매우 놀랄 일도 아니었다. 휴대용 솥단지인 동복銅을 싣고 평안한 얼굴로 앉아 있는 편두의 무사를 보았다. 나의 조상도 그 피가 섞여 있어 저이처럼 북방의 대초원을 달렸을까? 덤덤히 앉은 북방의 무사를 뒤로하고 금령총 전시관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금방울 소리 울리며 마당을 뛰어가던 신라 소년의 그림자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오늘 아들을 대학 기숙사에 들여보냈다. 기숙사에 짐을 풀어놓고 아들과 인사를 나눴다. 덩치 커다란 아들이 다시 돌아서서 좁은 길로 걸어 올라갔다. 아들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돌아봐라. 돌아봐라.’ 되뇌면서…
집으로 가는 길. 성인이 된 아이의 옛 기억에 웃음이 나왔다. 아들은 쪽쪽이라고 부르는 공갈 젖꼭지를 걸음마를 떼고서도 몇 개월이 지나도록 입에 물고 다녔다. 쪽쪽이를 물고 신나게 뛰어다니던 아이. 입에서 뽑을라치면 강한 도리질에 손사래까지 보탰으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를 어찌 이길 수 있었겠는가? 할 수 없이 공갈 젖꼭지가 정서 발달과 안정적인 수면에 도움이 된다는 것으로 위안 삼았다. 그러나 늦은 나이까지 쪽쪽이를 사용하면 중이염도 잘 오고 특히 언어발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기에 두 돌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끊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날이었다. 마루에 서 있던 아이 입에서 그 물건을 쑥 뽑아 부엌 끄트머리 쓰레기통에 버렸다. 녀석은 머리칼을 휘날리면서 쓰레기통으로 달려가서는 뚜껑을 열어젖혔다. 그러고는 손을 쑥 집어넣었다. 얼른 달려가서 아이를 잡고 설득했다. 울면서 돌아서던 어리지만, 의젓한 아들의 뒷모습이 세월을 뛰어넘어 겹쳐 보였다. 그때는 울면서 돌아섰지만, 오늘은 웃으면서 돌아서 너른 세상으로 발을 디뎠다.
몇 해 전 조상 찾기가 잠시 유행한 적이 있었다. 나도 그 시류에 편성해서 입안 점막을 긁어 검사업체에 보냈었다. 놀랍게도 나의 DNA는 한국, 중국, 일본에 주로 나타나는 유전자로 구성되어 있었고 북방에서 내려온 걸로 추정되었다. 그렇다. 나도 금령총에 있었던 기마무사의 피가 톡 떨궈져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늘어난 흰 머리칼의 나는 여기 두 발로 서 있지만 오늘 대학 문을 들어선 나의 아들은 저 북방의 기마무사처럼 넓은 세상을 무한의 발걸음으로 내디딜 것이다.
금방울을 허리에 꿰고 달리던 아이를 그리워하던 신라의 선인은 슬픈 얼굴을 하였지만 나는 어린 아들의 두 손 꼭 잡아 주고는 웃어보였다. 쪽쪽이를 벗어 던지고 열린 세상으로 나아가는 아이에게 넓디넓은 고원을 휘휘 달렸던 조상의 피 한 방울 보탰기에 기쁘게 기숙사로 떠나보냈다. 아마 오늘 밤 꿈속에는 금방울과 쪽쪽이로 가득할 것이다.
신라 기마인물형 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