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그 물을 마시지 마오

by 대니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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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동자가 커지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어, 어…’ 하는 순간 그 아이는 그것을 꿀꺽 삼켜버렸다.

저녁 아홉 시. 근무를 마치고 아파트 커뮤니티의 목욕탕으로 서둘러 내려갔다. 늦은 시간이면 요란을 피우던 아이들이 많이 없을 터이니 조용하겠거니 생각했다. 샤워기에서 뿌려지는 따뜻한 물줄기에 온몸에 묻어있던 노곤함이 씻겨 나갔다. 개운한 마음으로 사우나 부스로 들어가 냉탕이 보이는 유리창 앞에 섰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냉탕 안에는 아이 둘이 장난치며 놀고 있었다. 벽에 붙어있는 수영금지, 물안경 금지라는 경고문은 어린아이들 눈높이보다 한참 높은 곳에 붙어 있기에 별다른 효험이 없어 보였다.

초등학교 2학년쯤 되어 보이는 개구쟁이 친구들. 탕 안의 아이는 작은 플라스틱 바가지에 냉탕 물을 가득 담았다. 그러고는 여러 사람이 거쳐 갔을 그 물을 냉탕의 턱에 걸터앉은 친구에게 건넸다. 건네받은 아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물을 벌컥 들이키기 시작했다. 한 번 더 삼키더니 볼을 씰룩씰룩한다. 그리고 냉탕에 도로 뱉어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코로나 때문에 한참 동안 닫혀있던 목욕탕에 분풀이하듯 격렬하게 물놀이하던 아이들과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목욕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3월의 남쪽 지방인데도 여전히 찬 기운이 느껴지는 쌀쌀한 저녁, 목욕탕의 아이들이 생각나 헛웃음이 나왔다. 나도 저만할 때가 있었지.


몇 해 인지 헤아리기도 힘든 까마득한 그날들. 도릿골이라 불리던 윗동네 기슭에서 흘러 내려오는 좁은 물줄기는 동네를 가로질렀다. 넓진 않지만, 야트막한 개울을 만들고 또다시 흘러 멀지 않은 바다로 빠져나갔다. 초등학교 저학년 부끄러움 없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그 시절, 동네 친구들과 개울 아래쪽에 돌멩이를 차곡차곡 쌓았다. 지금으로 치면 작은 수영장이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수영복이 있을 리 없는 친구들과 팬티 바람으로 몸도 다 담가지지 않는 그곳에 바짝 엎드려 얼굴을 물속에 박았다 내밀었다 하면서 물장구를 치곤 했다.

“우리 누가 더 오래 숨 참나 시합해보자.” 누가 했는지도 모를 그 한마디에 모두 얼굴을 물속에 넣고 침을 꼴깍 삼켰다. 숨 짧은 몇 녀석이 먼저 머리를 들고 큰 숨을 내쉬었다. “야, 빨리 나와, 네가 이겼어.”라고 말하며 등짝을 찰싹 내리치면 그제야 머리를 들었다. 숨 참느라 힘들었던 벌건 얼굴을 들면 입안에 들어와 있던 개울물이 목으로 꼴깍꼴깍 넘어갔었다. 콜록콜록하면서도 그게 뭐가 그리 재밌다고 서로 마주 보며 웃던 친구들. 얼굴도 희미한 그 기억 한 토막 따라 얼마 전 읽은 신문 기사가 생각났다.

일 년에 물을 두 번밖에 교체하지 않은 이웃 나라 온천에서 레지오넬라균이 기준치의 3,700배 이상이나 검출되었다.


1976년 미국 필라델피아호텔에서 열린 ‘재향군인(legionnaire 프랑스 외인 부대원에서 유래)의 모임’에서 레지오넬라균에 감염된 환자가 200여 명 발생해 34명이 사망했으며, 이후 미국 질병통제센터(CDC)가 이를 ‘레지오넬라병’이라고 명명하였다. 레지오넬라(Legionella)는 폭 0.3-0.9㎛, 길이 2-20㎛의 막대기 모양을 한 박테리아의 일종으로, 오염된 물에 있는 레지오넬라균이 몸속에 들어와 폐렴이나 독감 증상을 일으킨다. 일반적인 사망률은 15% 정도이지만, 면역기능이 떨어진 사람의 경우 치사율이 8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지오넬라균은 25~42℃ 정도의 물을 선호하기에 아이들이 삼키고 뱉었던 20℃ 정도의 냉탕은 위험이 덜 할 것이다. 하지만 사고란 놈은 늘 예측을 뛰어넘어서 일어나기에 별일이 없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시원한 바람에 젖은 머리카락이 서늘해졌다. 그때 같이 개울물 마시며 놀던 친구들은 건강히 잘 지내고 있겠지. 내일은 관리사무소에 전화 한번 해야겠다. ‘목욕탕 물을 마시지 마시오.’란 경고판이 필요할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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