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삼월 호시절이라는 말 무색하게 멀리서 달려온 산골 서늘한 기운에 걸음을 재촉했다. 발끝 따라 흩어지는 저녁 공기 살살 공그르며 걷다 아스라한 담장 옆 꽃나무를 보았다. 벚나무 끝 일찍 핀 꽃잎, 얕은 담벼락에 그림자 빼앗기고 길바닥에 나풀거렸다. 삼월의 찬 바람 눈치채지 못한 성급한 벚나무는 서투른 꽃잎 하나둘 바람 따라 떠나보냈을 것이다. 찹찹한 저녁 바람 몇 번이면 꽃피우기 이른 시기인 줄 알았을 법도 한데. 어리석은 벚나무는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나무를 돌아보고는, 혀를 끌끌 차고 걸음을 옮겼다.
가로등 불빛이 나뭇잎 헤집고 내려와 함께 걷다 어둠 끝자락에 멈추어 섰다. 숨은 불빛 따라 하늘을 보니 하얀 솜뭉치들이 아파트 벽에 툭툭 튀어나와서는 한들거렸다. 목련 나무. 그 나무가 아파트 벽 옆에 서서 가로등 불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천구백팔십몇년에 발매된 양희은 LP의 타이틀곡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밤늦게까지 하는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가방 싸 들고 밖으로 나갔다. 카세트플레이어 mymy에서 흘러나오던 양희은의 목소리. 왜 이루어질 수 없는지 알 수 없었지만, 듣고 또 들었다. 아무리 들어도 지치지 않던 그 시간을 걸어 시내 빵집에 닿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허니타운이었지 싶은 그 빵집까지 주황색 불빛 따라 걸으며 들었던 노래. ‘너의 치~임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은 지금도 입안에서 맴돈다. 그런데, 그 노래와 목련 나무가 무슨 연관이 있길래?
<하얀 목련>은 양희은 카세트테이프 2면의 타이틀곡이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끝나고 임은 떠났어도 봄이 오면 피어나는 하얀 목련처럼 새로운 사랑이 다가올 것이라는 약속 같았다. 어쨌든 1면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하얀 목련>을 연이어 들으면 앞의 노래에 담겨있던 서늘한 공허함이 조금은 채워지는 느낌이 들어 그렇게도 자주 들었었다.
밤하늘 뒤덮은 하얀 꽃송이들. 한참 동안 보았다. 가로등 빛 받아 더 새하얗게 반짝이는 보석 같은 꽃송이들.
‘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 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
작은 소리로 몇 소절 불렀다. 활짝 피어난 목련꽃을 마음에 담고 다시 저녁을 걸었다. 작은 공간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냈기에 아파트 한 바퀴 더 돌고서 다시 벚나무 앞에 섰다. 이상하네, 뭔가 다른데. 그렇겠거니 하며 서둘러 피어난 벚나무를 구박했었는데. 핸드폰 카메라 앱을 들이댔다. 핸드폰 화면에 뜬 검색 결과, 아뿔싸. 어리석음에 타박받아야 할 것은 ‘나’였다. 어리석다며 혀를 끌끌 찼던 그 벚꽃은 제철에 핀 매화였다. 어스름 밤빛에 아둔한 사람 하나가 제대로 피워낸 나무에 쓸데없는 말 하나 보탠 꼴이라니. 듣는 사람은 없었지만, 얼굴이 달아올랐다. ‘고결한 마음’이 꽃말인 매화는 무지한 인간의 작은 속삭임을 들었을까.
추운 겨울 보내고 이른 봄에 아름다움 피워낸 매화를 돌아보았다. 까만 밤하늘을 수놓았던 하얀 목련을 떠올렸다. 양희은의 노래와 함께. 아마 목련의 꽃말도 매화의 고결한 마음과 비슷한 언저리에 있을 것이다. 밤길에 마주친 봄꽃에 설레는 마음 안고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먼 하늘에 작은 별이 빛나고 있었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https://www.youtube.com/watch?v=7220Gk_Q1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