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박물관에서
소리 예술을 만나다

by 대니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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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박물관 3층, 빈티지 아니면 클래식풍 스피커 앞에 앉았다. 벽면을 꽉 채운 백 년이 되어 간다는, 전 세계에 몇 대 되지 않는다는 스피커를 보고 있자니 세월을 헤쳐나가다 생의 끝에 앉은 노철학자를 보는 듯했다. 깔끔하게 관리되었지만 피해 갈 수 없는 세월의 흔적도 감동의 한 부분이었다.

“노래 한 곡 들어 보시겠어요?”

‘Con te partirò 그대와 함께 떠나리’. Time to say goodbye란 노래로 더 알려진 안드레아 보첼리의 달콤한 노래에 절로 눈이 감겼다. 청력을 잃은 베토벤이 그러했듯이 시력을 잃은 그도 감동을 넘어선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Quando sono solo Sogno all’orizzonte…, 혼자일 때면 수평선을 생각하며…’.

1946년 Western Electric 사에서 만든 스피커 WE75C에서 흘러나오는 부드럽고도 향기로운 선율은 안드레아 보첼리가 바로 앞에서 불러주는 것처럼 깊은 감동을 주었다. 노래가 끝나고 정적이 흘렀다.

“어떠세요, 한 곡 더 들어보시겠어요?”

“소프라노 조수미의 Lascia ch'io panga에요.”

날카로운 소리를 썩 좋아하지 않지만 들어보기로 했다. 5초도 지나지 않아 나의 편견은 산산조각 났다. ‘울게 하소서’로 알려진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2막에서 적군의 여왕 아르미다에 사로잡힌 알미레나가 자유를 염원하며 부르는 아리아다.

‘Lascia ch'io pianga/mia cruda sorte/e che sospiri/la libert. 나를 울게 하소서 내 잔혹한 운명에 그리고 한탄으로 자유를 그리네’.

영화 파리넬리에서 카스트라토(거세된 남성 가수)의 목소리로 들은 ‘울게 하소서’. 그 강렬하고도 장엄한 소리를 떠올리며 귀 기울였다. 스피커에서 퍼져 나오는 조수미의 ‘울게 하소서’는 예전 소프라노로 각인 되었던 날카로움을 순식간에 잊게 했다. 청량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그녀의 목소리는 어둑어둑한 스피커 가득한 공간, 공간 너머 지붕을 뚫고 파란 창공을 가르며 나는 하얀 새가 되었다.

1936년산 Western Electric Mirrophonic System - 거울에 자기 얼굴을 비추면 자기 얼굴을 그대로 볼 수 있듯이 원음재생 능력이 잡음 없이 그대로 재생한다는 뜻으로 소리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미로포닉의 의미가 설명되어 있었다. - 을 통해 시대의 천재 소프라노 조수미의 한탄 가득 찬 비장한 아름다움이 온 공간을 채우고 또 내 마음속에 파도쳤다. 그 소리는 소프라노의 소리가 아니라 적국에 갇힌 공주의 비통과 갈망 그 자체였다.

벽면에 붙은 스피커가 들려준 감동의 시간이 끝나고 잠깐의 적막감, 손뼉을 칠 수밖에 없었다. 한 사람이 쌓아 놓은 일생의 열정에 흠뻑 젖은 행복한 봄날, 아쉬움 한 자락 남기고 돌아서 나오는 길가엔 불어오는 연한 바람결 따라 하얀 벚꽃잎이 흩뿌리고 있었다.

안드레아보첼리 Time to say goodbye

조수미 Lascia ch'io pan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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