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잘못한 것도 없는데…”
민호가 돌아나가면서 엄마를 흘겨봤다. 민호, 민하 형제는 돌 되기 전부터 우리 병원 단골이었다. 방글방글 웃으며 누워있던 동글동글한 녀석들이 훌쩍 커서는 여섯 살, 아홉 살이 되었다. 형 민호가 엄마를 흘겨본 사연은 이렇다. 동생 민하가 39도 이상 고열이 나서 검사했더니 요즘 유행하는 독감이었다. 탈수에 먹지 못하는 민하를 집에서 보살필 수 없었다. 아이들 아빠도 다리를 다쳐 사내 녀석 둘을 데리고 있을 수 없었다. 아이 엄마는? 우리병원에서 근무하는 병동 간호사다.
아이 엄마이자 병동 입원환자 열 명을 보살펴야 하는 진아 씨는 민하가 입원하는 오늘, 저녁 8시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나이트’ 근무가 연속 3일이다. 민하와 같이 있으면 형 민호도 독감 증상이 나타날 수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서 기침 콧물만 조금 있는 자신도 입원해야 한다는 말에 ‘잘 못 한 것 없다.’라고 항변한 것이다.
입원실을 운영하는 병원은 대부분 3교대로 간호 인력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있는 곳은 지방의 작은 소도시라 정규 간호 인력 구하기가 정말 ‘하늘의 별 따기’다. 궁여지책으로 2교대로 병동을 돌리고 있지만, 아동병원 특성상 계속 맞닥뜨리는 환자 보호자와 생기는 스트레스, 불규칙하게 바뀌는 밤낮 교대 근무 등으로 숙련된 간호사 구하기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오후 회진을 위해 8층 병동으로 올라갔다. 병동 처치실에서 진아 씨는 큰아이 민호의 정맥 라인을 잡고 있었다. 혈관에 꽂은 주삿바늘에서 검사에 필요한 핏방울이 튜브에 뚝뚝 떨어졌다. 녀석은 울지도 않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우리, 민호 다 컸구나. 이제 울지도 않고. 잘 참았어.”
내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생긋 웃어주는 귀여운 녀석.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고, 진아 씨, 어떻게 엄마가 아들 혈관을 잡아요?”
별다른 대답 없이 씩 웃는 진아 씨. 멋진 엄마를 바라보는 아들의 반짝이는 눈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다행히 동생 민하는 엄마의 밤샘 간호 덕분인지 고열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음날 회진 시간, ‘잘못한 것’ 없는 민호와 조금 좋아진 민하는 멀리 떨어진 침대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스마트폰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고, 어젯밤 근무로 힘들었을 진아 씨는 낮은 보호자 침대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고단했던 시간을 녹이고 있었다. 진아 씨가 깰까 봐 아이들 진찰을 서둘러 끝내고 병실을 나왔다. 병동에서 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깊은 잠에 빠진 엄마를 위해 조용히 게임하던 녀석들을 보니 괜히 미안해졌다. 엄마의 일터에서 아픈 아이들을 보살피는 엄마를 병실 문틈으로 지켜본 두 녀석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십 년 전 대학병원 소아과 전공의 때였다. 숱한 중환자를 만나고 이틀에 한 번씩 돌아왔던 24시간 이상 연속 당직의 날들을 보내고서야 1년차 딱지를 뗄 수 있었다. 2년차 전공의도 이틀에 한 번 당직이란 건 변함없지만 병동과 응급실에서 1차로 환자를 보지 않아도 되었기에 1년 차 때보다는 여유 있었다. 하지만 1년차 전공의가 해결 못하거나 중환자가 오면 백 커버 - 인공호흡기 세팅이나 바이털 사인이 흔들리는 환자 치료를 지원하고 정확한 학문적 이론으로 1년차를 가르치는 모든 것을 포함 - 해야 하기에 마냥 편안한 자리는 아니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대학병원의 3월은 전쟁터였다. 갓 의사 면허를 딴 인턴 선생에 응급실 등 최전선에서 인턴을 마치고 새로 배치된 1년차 레지던트, 그 뒤에서 두 눈 부릅뜨고 그들을 지켜봐야 하는 2년차들로 살얼음판인 곳. 그때 만삭의 아내는 규칙적인 진통이 와서 내가 소아과 전공의 2년차로 있는 대학병원으로 달려왔다.
아내와 서둘러 분만실로 들어섰다. 산부인과 전공의 4년차인 대학 동기의 손을 잡고 아내를 부탁했다. 그때 허리춤의 까만 삐삐가 요란하게 울었다. 나는 분만 대기실 침대에 아내를 남겨 놓은 채 신생아 중환자실로 달려가야 했다. 며칠 전 1,500g 조금 넘는 체중에 숨쉬기도 힘든 상태로 입원한 아이 때문이었다. 3월 19일, 나는 둘째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지켜보지 못했다.
그날, 다른 아이를 보느라 아내 곁에 있지 못했던 나처럼 우리 병원 간호사 진아 씨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픈 자식이 옆에 있어도 밤새 다른 아이들을 간호해야 했던 그 마음을 어찌 모를까.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틈틈이 한 번씩 아이들을 살피며 하루를 애썼을 것이다.
사는 동안 언젠가 그리고 누구든 그런 날을 맞닥뜨리게 된다. ‘잘못한 것’ 없어도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순간을. 이십 년 전 둘째 아이가 태어난 날. 민호가 엄마와 동생을 위해 입원한 날. 전공의 시절 생사의 갈림길에 선 아이들을 만나야 했던 숱한 나날들. 또 앞으로 소아과 의사로 살아가면서 부딪히게 될 장면들. 그 앞에서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서 있어야 할까? 지금 대답할 수는 없지만 ‘잘못한 것 없는데’란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회진을 마치고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동안 낮은 침대 이불 아래서 잠든 엄마와 그 곁에서 조용히 놀던 아이들이 계속 떠올랐다. 아이들 엄마는 고열에 끙끙 앓던 자식이 방긋 웃으면서 노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단잠에 빠졌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순간을 묵묵히 견뎌준 진아 씨가 고마웠다. 세 식구가 평화로이 모여 있는 작은 병실을 돌아 나오며 진아 씨 가족이 행복하길 진심으로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