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니보이 Sep 03. 2024

아들과 음악 따라 시간 여행

   ‘Caro mio ben, Credi mial men~’

   (사랑스러운 내 연인이여 어떠한 경우라도 날 믿어줘요)

   달콤하고 잔잔한 멜로디 따라 나오는 파바로티의 부드러운 노랫말. 몇 해 전 성악 공부를 할 때 처음 배운 노래여서 그런지, 이 노래만 나오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된다. 한 소절을 마칠 때쯤 옆자리에 있던 아들이 말했다. “아빠, 제 핸드폰 연결해도 되나요?” 음악 같이 듣자는 아들 말에 그러자고 했다. 아들은 블루투스로 자동차 스피커와 핸드폰을 연결했다. 잠시 뒤 노래가 들려왔다. 

   ‘I was born to love you with every single beat of my heart~’ 

   (난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죠. 내 심장이 뛸 때마다)

   퀸(Queen)의 유명한 노래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십 오륙 년 전 기억이 아스라이 떠올랐다. 아들이 네다섯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당시 유명했던 마술사 이은결이 지역 방송국에서 공연할 때 아이들과 같이 관람하러 갔다. 마술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공연 마지막에 선물로 받았던 가짜 금화 하나가 생각났다. 공연 내내 배경음악으로 채웠던 노래 ‘I was born to love you’도 함께. 

   “아들, 어릴 때 봤던 마술 공연에서 이 노래 계속 나왔는데 기억나니?” 기억나지 않는다며 도리질하는 아들은 운전하다 졸지 말라며 소금 사탕 하나를 까서 손에 놓아주었다. 퀸(Queen)의 노래가 끝나면 무슨 음악을 틀어줄지 내심 기대되었다. 

   ‘She′s gone out of my life I was wrong~’

   (그녀가 내 삶에서 떠났어! 내 잘못이야) 

   “아빠, 지난번에 말씀하신 노래가 이거였어요?” 

   아들은 1990년 발매된 스틸하트(Steellheart)의 노래를 틀었다. 

   “아냐, 그거 말고. I've been gone a long time, wating for you~(난 아주 오래 떠나 있었어요, 당신   을 기다리면서) 하는 거 말이야.” 

   1975년 영국 출신 록밴드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의 7집에 실린 ‘She's gone’이 흘러나왔다. 

   “아빠, 노래 좋으네요.”

   가사는 몰라도 리듬에 맞춰 아들과 같이 흥얼거렸다. 방학을 마치고 다시 기숙사로 들어가는 아들과 짐을 가득 실은 차 안에는 내가 아들 나이 때쯤 듣던 음악들로 가득했다. 

   ‘Are you going to Scarborough Fair?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스카버러 시장에 가나요? 파슬리 세이지 로즈메리와 백리향)

   1966년 포크 듀오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의 3집에 수록된 곡으로 세기의 듀오인 두 사람의 화음이 돋보이는 노래다. 

   “아들, 이런 노래를 어떻게 아는 거니?” 

   “어릴 때 아빠랑 같이 많이 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이제는 성년이 된 막내의 웃는 목소리에 좋기도 하고 약간은 서운한 마음도 들었지만 제 인생의 항로에 들어선 청년 아닌가. 노래가 끝나자마자 아들은 다른 노래 하나를 틀었다. 

   ‘On a dark desert highway Cool wind in my hair~’

   (어두운 사막의 선선한 바람에 머리칼이 날리고) 

   현란한 기타 음이 끝나고 흘러나온 가사. 1977년에 발매된 이글스(Eagles)의 다섯 번째 앨범에 실린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였다. “아빠, 기타 배우시니까 나중에 이 곡도 연주해 보세요.” 아들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크게 한번 웃었다. “그럼. 이 정도야, 아빠가 열심히 하면 금방 할 수 있지. 조금만 기다려 봐.” 초보 딱지도 떼지 못한 초급자에게 버거운 도전이 될 테지만, 아들의 응원에 도전해 봐야겠다. “아들, 아빠는 이 곡도 좋지만, 영화 ‘빽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에서 주인공 마이클 J 폭스가 했던 기타 연주 한번 해보고 싶어.” 

   1985년 개봉한 영화 Back to the future에서 주인공 마티는 1955년으로 간다. 아빠 엄마의 졸업 파티에서 손가락을 다친 기타리스트 마빈 베리 대신 마티가 기타 연주를 하게 되는데 이 곡이 유명한 척 베리(Chuck Berry)의 ‘자니 비 굿(Johnny B. Goode)’이다. 주인공 마티의 연주를 들은 마빈 베리는 사촌 척 베리에게 마티의 연주를 전화로 들려준다. 이 연주를 들은 척 베리가 2008년 롤링스톤 매거진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송 500곡’ 중 1위를 한 자기 노래를 작곡했다는 재미있는 설정이다. 아들과도 몇 번이나 같이 봤던 영화였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기타 소리에 마이클 J 폭스가 무대를 뛰어다니며 연주하는 영화의 장면이 차창에 스쳐 지나갔다. 기타 소리가 귓전에서 희미해질 때쯤 아들 기숙사에 닿았다. 무거운 짐들을 둘이 끙끙대며 옮겼다.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내고 이제 갓 스물 넘긴 멋진 아들의 두 손을 꼭 잡았다. 기억나지 않은 어린 시절부터 아빠와 같이 듣던 음악을 기억해 준 아들이 고마웠다. 손 흔들며 서 있는 아들에게 같이 손 흔들어 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옆자리는 비었지만, 아들과 함께 듣던 음악들은 여전히 차 안 가득 남아 속삭이고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_WSXXPQYeY

3분경부터 보시면 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