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 덥다 덥다 하며 에어컨을 켰었는데 한여름 쫓은 빗방울이 그치자, 날씨가 금세 쌀쌀해졌다. 에어컨을 끄고 거실 창문을 열었더니 후끈한 공기는 간데없고 찌르르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먼저 달려왔다. 가만가만 창가에 서서 킁킁 내음 맡으니 이제야 가을인가 싶어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온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메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아름다워요.’
올 7월 21일 돌아가신 가수 김민기의 곡이다. 1971년 고은이 작사하고 김민기가 작곡해 최양숙이 최초로 발표한 곡으로 20년 뒤에 김민기가 새로 녹음하여 자신의 음반에 실었다. 입안에 맴도는 잔잔한 노랫말은 어느새 가을 한복판에 서서 낙엽을 밟고 있는 기분이 들게 한다.
그런데 왜 노랫말엔 ‘외로운 여자’, ‘헤매인 여자’, ‘모르는 여자’가 아름답다고 했을까?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노랫말만 읊조리면 가을 냄새 가득한 서정시 그 자체인데. 한 5년 전 성추행으로 신문을 장식하며 낙양의 지가를 올렸던 시인의 시어(詩語), 시 한 편에 개인적 성향이 포함되지 않았었기를.
작가를 떠난 작품은 이미 작가의 것이 아니라고 믿기에 가을바람 묻어 있는 고운 노랫말 흥얼거리며 쌓인 낙엽을 흩어보는 상상을 해본다. 낙엽이 흩어진 날, 헤매인 남자가 아름다울까?.
방충망을 지나온 선선한 바람이 느껴진 순간 또 다른 노래가 비집고 들어온다. ‘Lonely, I’m Mr. Lonely, I have nobody for my own.’ 1964년 발표된 바비 빈튼(Bobby Vinton)의 Mr. Lonely다. 낭만과 공허함이 함께 하던 사춘기 시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였다. 호르몬이 정신과 육체를 지배하던 그 시절, 멜랑꼴리한 멜로디와 쉬운 가사 덕분에 한참을 흥얼거렸다.
가을 초입의 저녁 날, 김민기의 허무한 목소리와 바비 빈튼의 분위기에 젖어 본다. 외롭다고 부르짖는 가수의 목소리에 문득, 외로움의 사전적 뜻이 궁금해졌다. 외로움은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 고독은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 마음을 함께 할 사람이 없어 혼자 동떨어져 있음을 느끼는 상태(狀態)라고 적혀있다.
독일 신학자 폴 틸리히(Paul Johannes Tillich)는 혼자 있는 고통이 ‘외로움’, 혼자 있을 때 즐거움을 느끼면 ‘고독’이라 했다. 나는 외로움보다 고독이 좋다. 온종일 찌푸린 얼굴, 볼멘소리 가득한 공간에는 외로움과 또 고독이란 놈에게도 곁을 내어줄 여유가 없어서일 수도 있다. 아니면 원래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을 수도 있다. 와글와글 TV 소리도 수그러지고 한낮 뜨거운 열기도 시들시들한 밤 열한 시, 머릿속에 가득했던 아픈 소리도 잠잠해졌다. 깨어난 고독과 함께 앉아 걸어온 시간을 헤아려 보고 또 마저 걸어야 하는 날을 기다리는 지금 시간이 좋다. 이 밤이 좋다. 아, 이런 노래도 있었지.
‘헝클어진 머리 바람에 주고 걸어가는 여자 … 고독한 여자 쓸쓸한 여자 외로운 여자 고독한 여자 미소는 슬퍼’(김정호, ‘고독한 여자의 미소는 슬퍼’ 중에서).
외로움과 고독은 아름답기도 슬프기도 하다. 아무렴 어떠랴. 혼자서도 충분히 슬프기도, 아름답기도 한 나의 신성한 시간이 있으니.
나의 신성한 고독이여
잠 깬 정원처럼
너는 풍요롭고 맑고 넓다
나의 신성한 고독이여,
그 앞에서 갖가지 소망이 기다리고 있는
황금의 문들을 굳게 잠가 두렴.
_나의 신성한 고독이여, 라이너 마리아 릴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