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들의 여수 밤바다
아니 여수 트레킹

by 대니보이
KakaoTalk_20250305_171922820.jpg

징. 징. 아득하게 울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어느 집이야, 알람 울리면 빨리 꺼야지’

구시렁거리다 다시 베개에 머리를 붙이려는데 ‘아뿔싸, 오늘이 그날이지.’ 얼른 머리맡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새벽 4시 알람은 내 구시렁거림에도 꿋꿋하게 울어대고 있었다. 몇 주 전, 대학 동기 둘이 여수에 내려가니 합류하라는 오더를 받은 게 오늘이다. 아내는 벌써 일어나 데운 우유에 오트밀 가루를 타고,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작은 배낭을 챙겨 차에 실었다. 시동을 건 뒤 4:30 AM 출발. 통영IC를 지나 남해고속도로를 달려 광양을 지나는 어느 길목 ‘Green & Clean POSCO’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포항에만 있는 게 아니었구나. 첫 쇳물이 나오던 날 만세 부르던 철강왕 박태준의 사진이 떠올랐다.

두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금오도 비렁길 여객터미널. 조용하고 한산하리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나처럼 새벽잠 없는 분들이 어찌 그리 많은지. 인산인해는 아니었지만, 여객선 터미널 안은 복작복작했다. 바깥 도로도 카페리에 올라가려고 줄 서 있는 차들로 그득했다.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어슬렁거리다 7시 10분쯤 터미널 안으로 들어갔다. 친구 정훈이 아침 7시 45분에 출발하는 배를 탄다고 했으니 아직 여유가 있었다. 줄 서 있는 사람들 사이로 보이는 시간표엔 7시 45분 신기항 출발, 아직 여유가 있…지 않았다. 정규 시간표 옆에 3월 1일 한정으로 시간표 하나가 더 붙어 있었다. 오늘은 7시 20분 출발. 저 배 놓치면 아무것도 없는 휑한 시골 부둣가에서 1시간을 더 보내야 한다. 급한 마음에 정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차여차하니 빨리 배를 타야 한다는 내 전화에 이삼 분 뒤 낯익은 얼굴 셋이 달려왔다. “빨리 신분증!” 넷은 겁나 빨리 달려 배로 뛰어들었다. 우리가 마지막 승객이었다.

천천히 숨 고르며 철제 계단을 올라 2층 객실로 올랐다. 미적지근한 온기의 장판 바닥에 배낭과 짐을 내려놓았다. 여수 살림남 정훈은 아침을 준비했다며 배급을 시작했다. ‘핫앤쿡’. 처음 보는 신문물이다. 미역국에 밥과 라면이 들어있는 일종의 전투식량이었다. 정훈은 생석회가 들어있는 발열체 봉지를 뜯어 봉지 바닥에 깔고 물을 붓는 데모를 했다. 순간 아득했던 옛 기억 한 토막이 떠올랐다.

언제였는지도 까마득한 그 시절, 대학생들은 일주일간 전방부대에 들어가 훈련을 받아야만 했다. 나와 입학 동기들도 매우 추운 날씨에 전방 철책 부대에 들어갔다. 철책 안으로 들어서자, 북쪽에서 환영의 방송 소리가 울렸다. ‘서울 oo대 학생들 잘 왔소. 어쩌고저쩌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추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세수도 마지막 날에만 했다. 밥 먹고 식판 닦기도 귀찮고 추워서 철제 식판에 비닐을 씌워 먹고 비닐만 벗겨내어 버렸다. 이 기억이 아닌가? 졸업하고 영천 3사관학교에서 훈련받을 때인가?

아무튼, 어제 일도 기억나지 않으니 전방이었는지 영천이었는지 가물가물하지만 어쨌든 식판에 비닐 씌워 먹던 그 시절 기분을 느끼게 해준 정훈에게 건배! 신문물에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을 즈음, 안내 방송이 울렸다. 금오도에 도착했으니 밥 먹을 생각 말고 얼른 내리라고. 바닥에 널브러진 신문물이며 장비들을 주섬주섬 챙겨 배에서 내렸다.

오후부터 비 온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다행히 약간 쌀쌀한 것만 빼곤 트레킹하기 좋은 날씨였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팔각형 정자가 눈에 띄었다. 각자 전투식량을 들고 정자로 올라섰다. 온기 가득한 비닐을 열고 푹 익은 라면 면발과 밥 한 숟갈 넘기니 ‘할렐루야~’ 천국이 따로 없다. 이 heaven을 준비해 준 정훈에게 또다시 건배!

든든하게 배 채우고 드디어 금오도 트레킹 출발. 정훈과 지도를 보는데 4코스 5코스가 눈에 들어왔다. 오십 중년들이 대여섯 시간 동안 걸을 수 있을까? 걱정됐지만 가보자고 모두 동의했다. 동네서 두 대 있다는 택시 중 한 대에 전화를 걸었다. 택시를 타고 1코스 시작점인 함구미에 도착했다. 함구미에서 두포까지 5km 구간, 두 시간으로 표시된 지도를 잠시 쳐다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 진짜 출발이다.

네 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산길을 걸었다. 눈앞에 들어오는 탁 틘 남쪽 바다, 희끗희끗 보이는 먼 섬 사이로 보이는 아득한 구름을 보며 걷고 또 걸었다. 학창 시절 얘기 한 꼭지, 안 아프게 살아갈 소망 하나에 발걸음 하나씩 내디뎠다. 걷다 보니 송광사 절터가 보였다. 고려시대 고승 보조국사 지눌이 절터를 찾기 위해 나무로 만든 새 세 마리를 날려 보냈는데 각각 순천 송광사, 고흥군 금산면 송광암, 그리고 한 마리가 여기 금오도에 앉았고 1195년 보조국사 지눌이 금오도에 절을 세운 기록이 있어 송광사 절터로 추정된다는 곳이다.

나는 절터보다 뒷산에 병풍처럼 서 있는 멋진 바위산이 눈에 들어왔다. 한참 암벽등반에 빠져 열심히 운동하던 초보 시절. 실내 암장에서 홀더를 딛고 위쪽 어려운 홀더 두 개를 손으로 잡고 당기는 순간 왼쪽 귓전으로 ‘똑’ 하는 공명음과 함께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초보답게 발과 다리를 쓰지 않고 손가락으로만 당기니 네 번째 손가락 마디가 견디지 못하고 또각 부러진 것이었다. 멋진 바위산을 보니 뭐랄까. 불가능하겠지만 언젠가는 다시 한번 암벽등반에 도전하고픈 맘이 문득 들었다. 송광사 절터를 지나 다시 걸었다.


체중이 빠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고생 중인 태환의 무릎 관절이 걱정될 즈음, 다른 사단이 일어났다. 훤칠한 키에 인물 좋고 건강한 대섭의 발목이 휘청댔다. 예전에 인대를 다친 적이 있어 5km 산길이 부담되었을 거다. 각자 힘내서 1코스 종점인 두포마을 경로당 앞에 모여 정훈이 배급해 준 간식으로 가볍게 배를 채웠다.

몸에 한기가 느껴질 때쯤 다리에 힘주고 일어나 두포에서 직포까지 3.5km인 2코스를 가볍게 걸어보기로 했다. 다행히 굴곡진 산길이 아니라 포장도로가 많아 1코스보다는 수월한 길. 20분쯤 걸었을까? 4시 이후에 내린다던 비가 4시간이나 일찍 떨어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내리던 빗방울이 무거워선지 아프다던 대섭의 발걸음이 더 흔들렸다. 멈춰 섰다. 계속 걷는다면 오십 넘은 아재의 무릎이며 발목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왔던 곳으로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모두의 얼굴이 환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이려나. 다시 콜택시에 전화하고 경로당 앞에서 노닥거리고 있는데 동네 어르신 한 분이 커피믹스를 타 주셨다. 달짝지근한 커피 한 잔에 몸과 마음이 따뜻해졌다.

2시 30분에 나가는 배표를 산 뒤 아침을 먹었던 팔각정에 둘러앉았다. 여수 살림남 정훈은 먼 곳에서 찾아온 벗을 위해 밤새 뜬 눈으로 반찬을 만들었다고 했다. 여수 갓김치, 가지무침, 볶음김치 뚜껑을 열었다. 아침에 시전한 편리한 신문물에 햇반, 짜장 소스, 마파두부를 데웠다. 쉰 넘은 아재 넷은 팔각정에 비닐 우비 깔고 앉아 궁상맞지만 잊지 못할 점심을 만끽했다. 낄낄 깔깔 추억도 쌓았다.

40년은 더 사용해야 할 친구의 무릎과 발목을 보존했다는 안도가 따뜻한 바닥 온기에 녹아내렸다. 1코스와 2코스 삼 분의 일만큼 돌아본 금오도지만, 다시 만나서 또 걸어야 하는 까닭을 남기고 섬을 떠나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장산 단풍 보러 안 가도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