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_남은 봄을 아껴 걸으며

by 대니보이

가게 앞에 붙은 ‘임대 문의’ 네 글자에 마음이 무거웠다.

오전 내내 아픈 아이들과 씨름하느라 고단한 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진료실 침대에 눕고 싶었지만, 그게 반복되면 아마도 몇 년 못 가 정말 병원 침대 신세를 질 게 뻔하다.

‘봄이 지나가나 봄’이라는 말처럼 봄은 벌써 지나가고 어느새 다가와 버린 여름이다. 거리엔 ‘봄’의 상큼함 대신 ‘여름’에 묻어 있는 꿉꿉하고도 눅눅한 열기가 느껴졌다. 그래도 몸 구석마다 껴 있는 중년의 곰팡이도 죽이고 비타민도 합성해야겠다 싶어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걷기 시작했다.

걷다 보니 따스한 햇살이 콧등을 간지럽혔다. 포만감 위에 충만함이 포개져 기분이 부풀어 오르던 찰나, 익숙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유리창에 붙은 안내문. 임대 문의. 발걸음을 멈췄다. 병원 바로 근처, 10년 가까이 단골로 드나들던 수선집이었다.

나처럼 팔다리가 아주 동양적인 사람이라면 새 옷을 사는 순간 제일 먼저 달려가야 하는 곳. 병원 바로 아래 있어서 틈나는 대로 옷을 가져가면 퇴근 시간에 맞춰 수선을 해주셨다. 칠순을 넘긴 사장님은 흰머리에 선한 웃음을 지닌 분이었다.

일 년 전쯤이었나. 옷가지를 들고 가게 앞에 섰다. 불 꺼진 가게 안을 기웃거려 봤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가게 전화번호로 전화했다. 3층에서 전화벨 우는 소리가 들렸다. 3층 살림집으로 연결된 전화였다. 한참 동안 연결음만 들릴 뿐 아무도 받지 않았다. 점심때마다 가게에 들렀지만 가게 안은 깜깜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점심을 먹고 다시 가게 앞으로 갔다. 가게 앞에 간판이 서 있었고 가게 문이 열려있었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던 사장님이 나를 보며 반갑게 웃었다.

“사장님 어디 다녀오셨어요? 아니면 … ”

“위암 수술하고 왔습니다. 수술은 잘 되었고 위암 초기라 별문제 없을 거라 …”

어색한 웃음과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답변하는 사장님 말에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잠시 하얘졌다.

“많이 놀라셨겠습니다. 지금 다른데 편찮으신 데는 없으시고요?”

사장님은 고개만 끄덕이셨다. 위로의 말, 감사의 말을 나누고 가게 문을 나오는데 마음속에 묵직한 감정이 흘렀다. 며칠 뒤, 청바지 하나 들고 수선집에 들렀다. 7cm만 잘라 달라는 나의 말에 수선집 사장님은 바지를 받아 들며 웃으셨다.

“원장님, 이게 마지막 바지가 되겠네요.”

이제는 쉬면서 건강 관리해야겠다며 가게를 닫는다고 하셨다. 덜컥하는 마음 꾹 누르며 사장님 손을 잡았다. 그동안 감사했다고, 건강관리 잘하시라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임대 문의’라는 안내문이 보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나이 들수록 잃어버리고 사라져가는 것들이 많아진다. 한편으론 세월과 함께 감정들이 뭉툭해지는 것 같아 나이 듦이 싫기도 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세월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니. 가게 안을 흘끗 바라본다. 한차례 따뜻한 바람이 불어온다. 문득 봄이 아직은 다 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남은 봄을 조용히 아껴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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