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_코로나 시절, 소아과 의사의 하루

3부_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내일이 되길

by 대니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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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여덟 시, 파란 진료실 문을 열자 밤새 갇혀 있던 서늘한 공기가 나를 맞았다. 창문틀의 ‘음압기’가 낮은 소음으로 돌아가고, 책상 위에는 파란 방호복과 페이스쉴드, KF-94 마스크, 라텍스 장갑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전염병과 싸우는 군인의 갑옷 같은 그것들이, 오늘 하루도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아무도 보지 못할 마스크 속 수염을 멋쩍게 한번 다듬고, 큰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첫 환자를 확인했다.

‘9개월 남자아기.’ 밤새 열에 시달려 먹지도 못하고, 이제는 울 힘조차 없는지 엄마 품에 축 늘어져 안겨 들어왔다. 탈수는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적이다. 120년 전 콜레라가 조선을 휩쓸었을 때, 수많은 아이가 쌀뜨물 같은 설사를 쏟아내다 탈수로 목숨을 잃었다. 체중의 10%만 빠져도 중증 탈수인데, 7kg 아이의 10%(700g)는 60kg 성인의 10%(6kg)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이다. 당시 콜레라 치사율이 50%를 넘었다는 것은, 아이 둘 중 하나는 속수무책으로 죽어갔다는 뜻이다. 지금이라면 수액 주사 한 대로 살릴 수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믿기지 않게도, 그런 구한말 같은 상황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잠시나마 벌어졌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 전담 병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확진된 아이들은 ‘재택 치료’라는 이름 아래 집에서 버텨야만 했다. 제대로 된 치료 한번 받지 못하고 아이 몇몇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정부는 부랴부랴 아동병원들을 코로나 거점 병원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의료 선진국이라던 대한민국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축 늘어진 아기를 서둘러 입원시켰다. 그리고 쉴 틈도 없이 재택 치료 중인 다른 아이들의 상담 전화를 돌렸다. 스피커폰 너머로 들려오는 아이의 거친 숨소리와 엄마의 불안한 목소리를 들으며 처방을 내렸다. 그렇게 입원 환자와 재택 환자, 외래의 고열 환자들을 쉴 새 없이 오가다 보면 어느새 혈당이 뚝 떨어져, 허겁지겁 식당으로 달려가 에너지를 채워야만 했다.

잠시 병동으로 올라가 입원한 아이들의 엑스레이와 혈액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중에도, 외래에서 대기 환자가 밀려 있다는 재촉 전화가 울렸다. 등 뒤에 꽂히는 불안한 시선들을 애써 뒤로하고 진료실로 돌아오자마자, 또 다른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원무과장이었다.

“원장님, 임상병리사 한 명이 양성입니다. 대체 인력을 어떡하죠?”

다급한 목소리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며칠 전에는 간호사 몇 명이 한꺼번에 확진되어 남은 직원들이 휴일도 반납한 채 버텼고, 청소 여사님들마저 번갈아 앓아누워 인력사무소를 수소문해야 했다. 고민할 틈도 없이 파도처럼 밀려드는 문제들을 겨우 해결하고 나면, 어느새 퇴근 시간인 여섯 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읽고 싶었던 책 한 권과, 외워야 할 노래 한 소절이 담긴 악보집은 2주째 가방 속에서 잠들어 있다. 퇴근 후에는 ‘피곤하다’고 말할 기운이 없어, 밥 먹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뜻 모를 텔레비전 소리에 잠들고 만다. 그리고 어김없이, 새벽 여섯 시 알람 소리에 놀라 눈을 떠야만 하는 날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음에,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음에 감사하며 다시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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