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_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내일이 되길
마감 직전, 세 살배기 여자아이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녀석은 의자에 앉자마자 온몸을 뒤틀며 입을 앙다물었다. 사탕을 주겠다는 엄마의 달콤한 제안도, 집에 가자는 나의 부드러운 설득도 통하지 않았다. 결국 엄마 품에 안겨 ‘앙’ 하고 울음을 터뜨린 순간, 나는 재빨리 아이의 입안을 확인했다. 역시나, 요즘 유행하는 수족구병이었다. 일주일은 족히 격리해야 하는 고약한 병. 나는 지친 엄마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고 아이를 돌려보냈다.
병원을 나서는데, 아뿔싸, 차 키가 없었다. 아침에 시동이 걸리지 않아 정비소에 차를 맡긴 것이 뒤늦게 생각났다. 나는 3분 거리의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타는 밤 시내버스. 텅 빈 버스 안에는 잔잔한 라디오 소리만이 흐르고 있었다. 창밖으로 스치는 익숙한 풍경과 나른한 음악에 스르르 눈이 감겼다.
그렇게 깜빡 잠이 들었을까. 문득 아주 오래전, 매일 같이 버스를 타야 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국민학교 5학년 방학 무렵, 우리 가족은 도천동 도릿골 근처에 살다가 북신동으로 이사했다. 학교까지 걸어서 5분이면 닿던 거리가, 버스를 타고 30분은 족히 가야 하는 먼 길이 되었다. 여동생은 이사한 집 근처로 전학했지만, 나는 일 년 후 졸업이라 버스 타고 다니기로 했다. 지금은 나만큼이나 덩치 커진 아들이지만 6학년 어린 아들을 버스로 30분 걸리는 학교에 혼자 보낼 수 있을까. 아마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6학년이 되어, 나는 매일 아침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 어머니는 아침마다 필통 안에 왕복 버스 요금을 넣어주셨고, 나는 그 필통이 든 책가방을 보물처럼 아꼈다. 연필을 꺼낼 때마다 동전이 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나만의 의식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버스에 올라탄 뒤에야 필통이 없단 것을 알았다. 아무리 가방을 뒤져도 버스 요금이 나올 리 없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그때, 손끝에 바스락거리는 신문지 한 부가 만져졌다. 나는 쭈뼛쭈뼛 기사님께 다가가, 돈 대신 신문을 내밀었다. 기사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셨다. 그 ‘통과’라는 눈짓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신문은 친구 P가 준 것이었다. P는 5학년 때까지 같은 동네에 살았는데, 새벽마다 신문 배달을 하던 친구였다. 그 시절 우리 동네에는 P처럼 우유나 신문을 배달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P는 종종 “이거 돌리고 남은 거야. 아버지 드려.”라며 내게 신문을 건네주곤 했다. P 덕분에 위기를 모면하고 나니, 문득 잊고 있던 장면이 떠올랐다. 하굣길 버스에서, 신문 배달하는 아이들이 옆구리에 낀 신문 뭉치에서 하나를 쑥 뽑아 기사님 옆에 툭 던져놓고는 당당하게 자리에 앉던 모습. 그것은 가난했지만, 씩씩했던 그 시절 아이들과 어른들 사이의 말 없는 약속 같은 것이었다. 다음 날 P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도 가끔 그런다며 멋쩍게 웃었다.
집에 돌아와서야 진료실 책상에서 가져온 신문을 펼쳐 들었다. 수족구병으로 열나는 아이들이 많았고 뇌파 검사 판독하느라 신문 볼 겨를이 없었다. 온라인으로 뉴스를 볼 수 있지만, 종이 신문을 넘겨야만 ‘오늘도 무사히 보냈구나.’ 안도하게 하는 작은 루틴이라 빼놓을 수 없었다. 신문을 한 장 두 장 넘기다, 문득 얼굴조차 가물가물한 친구 P가 생각났다. 내 어려움을 예상이라도 한 듯, 턱 하니 건네주었던 신문 한 부. 하마터면 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고 나서야 집에 갈 수 있었을 나에게 건네준 고마운 처방전 같았던 신문이 떠올랐다.
그때의 내 막막함이 떠오르자, 오늘 진료실에서 울음을 터뜨렸던 세 살배기 아이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입안이 아픈 것도 서러운데, 낯선 어른 셋에게 둘러싸여 입을 벌리라는 재촉을 들었을 때 아이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나도 어릴 때 통영 오행당 골목에 있던 소아과를 다녔다. 소아과 선생님은 순해서 잘 울지 않던 내게 10원짜리 동전 하나씩을 주었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내 안에 10원짜리 동전 몇 개가 쌓여 지금의 나를 이 자리에 앉게 한 것일까.
나는 어쩌면 P가 건넨 신문처럼, 의사 선생님이 쥐여 준 동전처럼, 살면서 수많은 이들의 선의에 빚을 지며 살아왔을 것이다. 어쩌면 그 빚을 깨닫지도 못한 채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른다. 두려움에 입을 앙다물었던 그 작은 아이에게, 의사인 나는 과연 어떤 동전, 어떤 신문을 건네주어야 했을까. 괜스레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깊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