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_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내일이 되길
“안돼!”
벌떡 일어나 앉았다. 이마엔 식은땀이 흥건했고, 심장은 요동치고 있었다. 수십 년 전 일인데, 아직도 꿈에 나오다니.
본과 3학년 임상실습 기간이었다. 다음 날 아침 7시에 있는 콘퍼런스 발표 자료를 만들어야 했다. 기숙사에 몇 대 없는 286 컴퓨터를 빌려서 저녁 7시 정도부터 타이핑을 시작했다. 의학도서관에서 빌린 내과 교과서와 최신 지식이 담긴 논문 복사본을 펼쳐 놓으니,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시간이 지나면 해가 뜰 것이고 도망가지 않는 한 아침 콘퍼런스에 가야 한다. 교수님들과 레지던트 선배들, 같은 실습 조 친구들 앞에서 밤새 정리한 내용을 발표하고 질문에도 답해야 한다. 전신성 홍반성낭창이라는 이름도 어려운 주제였지만 교과서와 리뷰 논문 내용이 좋아 발표 순서에 맞게 정리하면 되었다. 정리하면서 내용을 외우게 되니, 느린 타자 솜씨도 쓸데가 있다고 생각했다.
“용과야, 이거 먹고 힘내서 해봐.”
같은 조 K가 음료수와 초코파이 하나 던져 놓고는 탁구 치러 가버렸다. 새벽 2시, 드디어 끝났다. “만세!”를 외친 바로 그 순간, 기숙사의 모든 불이 꺼졌다. 함께 꺼져버린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나는 얼어붙었다. 잠시 뒤 불이 켜지고 황급히 컴퓨터를 켰지만, 내가 밤새 매달렸던 파일은 어디에도 없었다. 흔적도 없이 날아간 것이다. 발표를 펑크내면 학생 담당 내과 레지던트의 싸늘한 시선에 얼어 죽을 수도 있다. 조별 점수도 꽝일 것이기에 졸린 눈을 비비며 다시 시작했다. 창밖이 훤해질 무렵에야 간신히 마침표를 찍었다. 핏발 선 눈과 돌처럼 굳은 목을 두드리며, 나는 몇 번이고 저장 메뉴를 눌렀다. 출력한 종이를 들고 내과 의국으로 뛰어가 OHP 필름으로 복사한 뒤, 서둘러 회의실로 향했다.
정신없이 발표를 마친 순간의 기억은 희미하다. 하지만 그날 학생 휴게실에서 먹었던 따뜻한 에그 토스트와 매콤한 비빔국수의 맛, 그리고 짧은 쪽잠의 온기만은 아직도 아련하게 남아있다. 의대를 졸업할 때까지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날의 아찔했던 기억은 내게 단연 압권이었다.
코로나가 주춤해지고 있는 사이 그동안 기를 펴지 못하던 장바이러스며 독감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3일 연휴의 첫날인 토요일, 대기실은 수족구병과 고열에 지친 아이들로 가득 찼다. 정신없이 오전 진료를 마치고 점심을 먹자, 쏟아지는 졸음에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얼마 전 TV에서 들은 “건강하게 살려면 식사 후에 움직이라.”는 말을 애써 떠올리며, 나는 습관처럼 ‘Ctrl S’를 누르고 진료실을 나섰다.
목덜미로 쏟아지는 늦가을 10월 햇살이 따사로웠다. 하천 변에는 홍가시나무가 붉게 흔들리고, 물 위에는 왜가리와 흰뺨검둥오리 가족이 한가로웠다. 바람길 한가운데 서서 찌뿌둥한 허리를 펴니, 맑고(淸) 밝은(明) 가을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저 청명한 푸르름을 내 마음에 저장할 수 있다면, ‘Ctrl+S’ 버튼을 스무 번쯤 누르고 싶었다. 센 바람에 모자를 눌러쓰고 계속 걸었다. 부르르 진동이 왔다. 3km 걸었다, 목표한 6천 걸음 채웠다는 알람이었다. 피곤한 몸, 무거운 걸음에 걸음을 보태 도착한 그곳. 이게 뭐라고 기분이 좋은지. 한 걸음이 모여 목표에 도달한 이 작은 성취감 앞에서, 나는 문득 서애 류성룡이 남긴 한 구절이 떠올랐다.
“원자 근지적야(遠者 近之積也). 먼 것은 가까운 것이 쌓인 것이다." 먼 곳에 뜻을 두되, 가까운 지금 여기에 충실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곳에 이른다는 뜻이다.
기숙사 전원이 나간 그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마침표를 찍었다. 도망치지 않고 충실히 보낸 그 시간이 쌓여 지금 내가 되었다. 가까운 산 너머로 첩첩이 쌓여 있는 산이 보였다. 한 발짝 더 내디뎌 희미하게 보이는 먼 산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선들선들 불어오는 연한 바람에 몸을 맡기며 7천 걸음에 도착한 집. 쌓여가는 정직한 시간을 걸으며, 그날 밤을 새우던 나를 조용히 다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