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_아껴쓰자 아킬레스

3부_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내일이 되길

by 대니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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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부터 검도 수련이 끝나면 왼발 뒤꿈치가 욱신거렸다. 왼 뒤꿈치를 든 채 움직여야 하는 검도의 특성상 가끔 있는 일이라,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나이 탓이겠거니’ 생각하며 스트레칭하고 며칠 쉬면 통증은 금세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렇게 안일하게 내버려둔 것이 오산이었다. 며칠 쉬고 괜찮아진 듯해 다시 도장에 나간 날, 발뒤꿈치에 칼로 벤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 꽂혔다. 나는 절뚝거리며 겨우 집으로 돌아와, 망설임 끝에 관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두 달쯤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안타까움이 섞인 위로에 고맙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욱신거리는 뒤꿈치를 노려본들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쉴 수밖에. 결국 며칠을 끙끙 앓다, 예전에 테니스 엘보로 신세 졌던 정형외과를 찾았다.

“이제 몸 좀 아껴 쓰세요, 나이 생각도 하시고. 한 계단도 걷지 말고, 엘리베이터 타시고요.”

진단명은 ‘아킬레스건염’이었다. 종아리 근육과 발꿈치뼈를 잇는 힘줄, 아킬레스건에 염증이 생긴 것이다. 웃으며 핀잔을 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기가 푹 죽었다. 나의 무신경과 부주의가, 내 몸의 아킬레스건을 일상의 ‘아킬레스건(치명적인 약점)’으로 만들어버린 셈이었다.

아킬레스. 그 이름의 유래를 찾으려면, 신화 속 그리스 북부 테살리아 지방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는 퓌티아의 왕 펠레우스와 바다의 여신 테티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숱한 남신들의 구혼을 받은 바다의 여신 테티스는, 끈질기게 구애한 인간 펠레우스를 남편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성대한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글귀가 적힌 황금사과, 소위 ‘파리스의 사과’를 던져놓았다. 트로이 전쟁의 불씨가 된 그 유명한 사과다.

여신 테티스는 인간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아킬레스가 필멸의 운명을 가질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녀는 아들을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해, 그 발목을 잡고 저승의 스틱스강에 온몸을 담갔다. 하지만 그녀의 손이 닿았던 발목 부위만은 강물에 젖지 못했고, 그곳은 아킬레스의 유일한 약점으로 남게 되었다. 결국 아킬레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파리스가 쏜 화살에 바로 그 발뒤꿈치를 맞고 쓰러진다. ‘치명적인 약점’을 뜻하는 ‘아킬레스건’의 유래다.

신화 속 아킬레스처럼, 나 또한 내 발뒤꿈치 때문에 고통받고 있었다. 물리치료실 침대에 엎드려 충격파 치료를 받았다. 힘줄을 때리는 날 선 아픔에, 나는 비명을 참으려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찔끔 새어 나오는 눈물과 ‘악’ 소리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고통 속에서 나는 엉뚱하게도 바다의 신을 원망했다. 그녀가 아킬레스의 두 발목을 번갈아 잡아가며 스틱스강에 담갔다면 이렇게 아프진 않았을 텐데. 애초에 에리스 여신을 결혼식에 초대만 했더라도, 트로이 전쟁도 아킬레스의 죽음도 없었을 것을….’ 쓸데없는 공상에 뒤척거리다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절뚝거리며 출근길에 나섰다. 다행히 전날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9층에 멈춰 서 있는 엘리베이터를 보고 2층 진료실을 향해 조심스레 한 계단씩 올랐다. 그때, 진료실 입구 계단 앞에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 있는 젊은 엄마가 보였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노란 옷을 입은 병아리 같은 아이가 네 발로 낑낑대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혹시나 아이가 넘어질까 싶어,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지켜보았다. 그 순간, 아이가 고개를 돌려 엄마와 눈을 맞추더니 세상을 다 가진 듯 환하게 웃었다. 나를 향한 웃음이 아니었지만, 그 빛나는 얼굴 하나에 내 아침이 환하게 열리는 기분이었다.

진료실 의자에 앉아 욱신거리는 발을 내려다보았다. 내 아픈 아킬레스건 위로, 조금 전 힘차게 계단을 오르던 아이의 작고 튼실한 발이 겹쳐 보였다. 아마도 아이의 작은 아킬레스건은 계단을 신나게 오르는 자식을 말없이 지켜보던, 엄마의 포근한 사랑이 한껏 감싸고 있었을 것이다. 두 손 두 발로 계단 오르던 저 아이가 두 다리로 걷게 되고 학교에 가고 또 사회에 나서더라도 언제까지나 엄마의 따듯한 그 눈길이 항상 함께하기를.

그나저나 나의 이 아픈 아킬레스건은 어찌할까. 이제 와 나이 드신 어머니께 말씀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점심 먹고 얼른 물리치료나 받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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