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G를 맞았다. 주삿바늘로 피부를 살짝 떠서 결핵균을 몸속으로 들여보냈다. 별다른 느낌이 없던 찰나, 10초 뒤부터 왼쪽 어깨에 묵직한 통증이 밀려왔다. 신생아들 눈에도 눈물이 맺힌다며 접종실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료실로 돌아와 나 역시 눈물을 찔끔 짜냈다. 이 아픈 BCG를 나는 왜 자처했을까.
40대 이후 성인이라면 학교 운동장에 길게 줄을 서서 이른바 ‘불주사’를 맞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유리 주사기에 백신을 채우고, 앞 아이가 맞고 나면 알코올램프에 쇠바늘을 달궈 소독하던 풍경, 소독된 그 뜨거운 주사기가 내 어깨에 닿던 감각. 내 왼쪽 어깨에도 그때의 불주사 흔적이 선명하다. 잊고 지냈던 그 까마득한 통증의 기억이 오늘 주사 한 방으로 되살아났다. 혼돈의 시대, 가난으로 몸부림치던 작은 나라가 후대에 좋은 나라를 물려주기 위해 내딛던 치열한 몸짓 중 하나였을 그 기억이 선명해졌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아픈 주사를 다시 선택했을까? 사연은 이렇다. 소아신경과 전문의로 발달과 신경 분야를 진료하지만, 기침과 열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매일 마주하는 소아과 의사이기도 하기에 나 역시 일 년에 몇 번은 꼭 혹독한 앓이를 한다. 코로나 시기에는 서너 번씩 감염되어 39도 고열에 시달렸고, 코로나 백신 부작용으로 3주 내내 타이레놀을 먹으며 진료실을 지켰다. 아파도 쉴 수 없었던 날들이었다.
그때 끙끙 앓던 나를 안타까워 하던 선배가 BCG 백신을 맞아보라고 권했었다. 한동안 그 말을 잊고 지냈다. 하지만 한 달 전부터 원인 모를 미열과 근육통으로 시름시름 앓았다. 코로나도 독감도 범인이 아니었다. 항생제를 일주일 정도 먹고 나니, 나을 때가 되어서인지, 아니면 약발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열도 떨어지고 통증도 희미해졌다. 그때, 선배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성인이 BCG 백신을 맞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훈련된 면역(Trained immunity)’이란 개념이 있다. BCG 백신을 맞음으로써 결핵뿐만 아니라, 비특이적 면역력을 강화하여 다양한 병원체에 대항할 수 있는 광범위한 감염 예방 효과를 얻는다는 의미이다. 주사는 아팠다. 하지만, 이 통증이 효과 있다면 ‘아마도’ 나는 소아과 의사라는 숙명의 굴레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며칠 뒤면 어깨에 고름이 차고 딱지가 앉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40년 전 불주사를 맞았던 국민학교 이후 격동의 시대를 지나, 무사히 중년이 되었던 것처럼, 앞으로 10년, 15년은 거뜬히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하필 소아과 의사’였던 고단한 오늘을 기분 좋게 추억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