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좀 지났는데, 이제 떡볶이는 못 먹겠네.”
아내의 탄식 어린 목소리에 가슴이 찌릿해졌다. 그토록 좋아하던 떡볶이인데, 이번에 얼마나 고생했으면 저런 말을 다 할까.
사단은 3주 전쯤이었다. 갑작스러운 어지럼증이 아내를 덮쳤다. 사실 '갑자기' 일어나는 일은 없겠지만, 어제 일도 가물거리는 나이가 되고 보니 놀라는 일은 늘 불청객처럼 들이닥쳤다. 근처 이비인후과에서 이석증 약을 처방 받아 약을 먹은 지 사흘째 되던 밤이었다. 자던 아내가 가슴이 빠개질 듯한 통증을 느끼며 깨어났다. 통증은 왼쪽 등뼈 근처까지 번져나갔다. 혹여 협심증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종합병원 내과로 달려갔다. 다행히 심전도와 가슴 CT 결과는 깨끗했다. 의사는 위식도 역류를 의심하며 약을 처방했다.
집에 돌아와 아내가 먹었던 어지럼증 약을 찾아보았다. 원인은 그곳에 있었다. 하부식도괄약근(LES)의 수축과 긴장은 부교감신경의 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이 담당하는데, 아내가 먹은 약의 항콜린 성분이 괄약근의 압력을 떨어뜨려 위산 역류를 일으킨 것이다. 5% 미만의 확률로 나타난다는 부작용이 하필 아내에게 찾아왔다. 통증 때문에 똑바로 누울 수도 없는 아내를 위해 온라인으로 '위식도 역류 방지 베개'를 주문했다. 아프지 않았다면 평생 알 일 없었을 그 기묘한 베개 위에서, 아내는 비행기 비즈니스석 같은 어중간한 경사를 유지한 채 4주를 보냈다.
하루 두 끼 가벼운 식사와 약으로 버티며, 기운 없이 배를 만지다 가끔 가슴팍을 움켜쥐는 아내를 보니 '효빈(效嚬)'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중국 월나라 미녀 서시는 가슴앓이가 있어 늘 미간을 찌푸리고 다녔는데, 그 모습조차 아름다워 마을 추녀들이 따라 했다는 고사다. 절세미인 서시도 혹시 위식도 역류를 앓았던 걸까. 아이 셋을 모두 성년으로 키워 떠나보내고 빈 둥지에 홀로 눈물짓던 아내가 이제는 가슴앓이까지 얻어 서시처럼 미간을 찡그리는 모습에 내 가슴도 함께 아려왔다.
3주가 지나자, 통증이 60% 정도 줄었다고 했다. 먹방 전성시대, 쉐프 전성시대라 TV를 켜면 음식이 나오지 않는 곳이 없다. 조심스레 채널을 돌리는 찰나, 시뻘건 양념의 도톰한 떡볶이에다 육수통에 담긴 부산어묵 먹방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내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오십 좀 지났는데, 이제 떡볶이는 못 먹겠네.” “여보, 조금만 지나면 다시 먹을 수 있을 테니 이 시기만 잘 넘겨 봅시다.”
위로를 건넸지만, 아내의 안타까운 표정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사실 아내가 아픈 동안 나 역시 몸이 좋지 않았다. 2주 넘게 이어지는 미열에다 온몸을 살살 때리는 듯한 근육통, 그리고 무력감에 시달렸다. 코로나도, 독감도 아니었고, 혈액검사도 정상이었다. 좁은 진료실에서 아픈 아이들을 매일 마주하는 소아과 의사의 숙명이라 하기엔 증상이 너무 길었다. 어쩌면 아내의 통증을 온몸으로 공감하라는 신의 계시였을지도 모르겠다. 이제야 아내와 나는 같이 회복 중이다. 저녁이면 둘이 앉아 ‘건강이 제일이다’를 주문처럼 외운 덕분일까.
아내는 여전히 떡볶이와의 작별을 아쉬워한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 역시 아파서, 혹은 나이가 들어서 더는 할 수 없게 되어 가슴을 움켜쥐며 아쉬워할 것들이 무엇일지. 통증이 잦아든 오늘 밤, 즐겨 듣던 노래를 틀어놓고 머지않아 이별을 고할 것들에게 미리 인사를 건넨다.
“사랑은 이제 그만 아픔도 이젠 그만, 사랑이여 이젠 안녕 안녕 슬픔이여 안녕 안녕”
-이장희, <슬픔이여 안녕> 中-
사랑도, 아픔도, 그리고 우리가 즐겼던 사소한 미각의 즐거움까지도, 언젠가 찾아올 그 모든 ‘안녕’을 위해, 오늘은 평안한 이 밤을 온전히 고마워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