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1일 0시. 보신각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사이 새 달력을 걸었다. 손에 쥔 지난 달력 속에는 무수히 많은 동그라미와 세모 표시가 어지럽게 표시되어 있었다. 일요일 반나절, 평일 밤 열한 시, 토요일과 일요일 저녁 여섯 시까지... 빼곡한 기록들은 마치 올가미처럼 나를 묶어두었던 시간의 흔적이었다.
새 달력을 걸자마자 오늘, 1월 1일 빨간 숫자 위에 다시 동그라미를 쳤다. 아침 8시 30분부터 저녁 6시까지 이어지는 당직이다. 당직이라 해서 당직실 탁자에 발 올리고 TV 보며 꾸벅꾸벅 조는 한가로운 풍경이 아니다. 아직 기세가 꺽이지 않은 독감 탓에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쉴 새 없이 밀려들었다. 아이들을 진찰하고, 혈액 검사와 독감 검사 결과를 확인한 뒤 처방을 내린다. 탈수가 심한 아이들에겐 전해질 수액을 연결하고, 필요에 따라 항생제나 영양소를 보충한다. 이렇게 숨 가쁘게 아픈 이들을 보는 것이 나의 당직이다.
그러다 문득 얼마 전 부산에서 있었던 사건 하나가 떠올랐다. 지난 12월 15일, 야간 기침과 거친 호흡음을 주소로 소아과 의원을 찾았던 한 아이의 이야기다. 세균성 기관지염이 의심되어 항생제 주사를 처방받은 아이는 투약 직후 급격히 상태가 악화되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인 원장은 즉각 산소를 공급하고 에피네프린을 투여하는 등 매뉴얼에 따른 필수 응급 처치를 다 했으나, 아이는 상태가 좋아지지 않아 현재 3차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중이다. 보호자는 즉시 형사 고소했고, 얼마 뒤 경찰은 병원을 찾아와 의사를 다그치며 핸드폰을 압수했다고 한다.
이십 년 전 나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창원의 한 종합병원에서 소아과 과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응급실에서 연락이 왔다. 여섯 살 남자아이가 고열과 설사로 처진 채 왔는데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었다. 서둘러 달려가 엑스레이를 확인했더니 심장이 흉곽 대비 절반 이상 커져 있었다. 심근염이 의심되는 위중한 상태였다. 아이를 중환자실로 옮기고 할 수 있는 처치를 다했지만, 다음 날 아침 아이의 심장 박동은 멈췄다.
며칠 뒤 병원 법무팀에서 연락이 왔다. 보호자가 의료진과의 면담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슬픔에 잠긴 보호자 곁에는 낯선 이들이 동석해 있었다. 결국 '돈'이었다. 아이를 잃었으니 보상하라는 요구였다. 나는 법무팀장에게 확고하게 말했다. 아이를 잃은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의학적으로 필요한 모든 검사와 처치를 다 했다고. 특히 심근염은 손쓸 새 없이 급사할 수 있는 무서운 질환이며, 여기서 돈을 주는 것은 나의 과실을 인정하는 꼴이 되니 절대 합의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다행히 그 이후 별다른 연락은 없었다.
소아 심근염은 환자에게도, 부모에게도, 그리고 치료하는 의사에게도 만나서는 안 될 고약한 질병이다. 주로 바이러스 감염이 원인으로 감기 증상이나 복통, 설사로 내원했다가 순식간에 악화된다. 특효약도 없이 심장 기능을 보조하는 보존적 치료에 기댈 뿐이다. 급성기 사망률이 5~20%에 달하니, 의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의사들이 가장 기피하고 싶은 질환 중 하나다. 부산의 그 아이가 아나필락시스였는지 심근염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의학의 본질은 '불확실성'에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교과서에 나와 있는 그 불확실성조차 단죄하는 세태가 되었다.
2026년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정원 대비 13.4%에 불과하다. 수도권은 16.6%, 지방은 8%라는 처참한 수치다. 이 중에서도 심장을 전공해 심근염 같은 치명적인 질환을 치료하겠다고 나설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한 개인의 선의만으로는 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다. 의학교과서에도 합병증이나 후유증 없이 100% 완치된다고 보장하는 병은 거의 없다. 그런데 단지 결과가 나쁘다는 이유로 형사 기소되고 재판에 끌려가야 한다면, 어떤 선의를 가진 의사가 그 위태로운 자리를 지키고 서 있겠는가.
우리 병원 주사실에도 탈수와 고열로 수액을 맞는 아이들이 누워 있다. 아직은 큰 문제 없이 지나 왔지만, 주사실에 누워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속엔 깊은 한숨이 차오른다.
내일도 나는 진료실 문을 열며 기도할 것이다. 어린 생명을 위해 애써온 시간들이 나에게 아픈 화살로 돌아오지 않는 하루가 되기를. 그리하여 '오늘도 무사히'. 다시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