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성대의 앞면은 어디일까

by 대니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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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수학여행 때 처음 마주했던 첨성대 앞에 다시 섰다. 아침 아홉 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라 그런지, 주변에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사각형 기단 위로 네모난 돌들이 층층이 쌓여 올라가 있었다. 마치 켜켜이 시간을 쌓은 듯 네모난 돌덩어리들은 몸을 휘돌아 틀며 올라갔다. 그러다 장고를 반쯤 잘라놓은 듯한 허리춤에서 멈춰 섰다. 사각모를 눌러쓴 첨성대 꼭대기 너머로는 아침 해가 살짝 걸려 있었다. 눈부신 빛을 피해 시선을 옮겼다. 오른쪽으로 아주 천천히 첨성대를 돌기 시작했다.

몇 발짝 옮기다 출입구 반대편, 첨성대 뒷면이라 할 수 있는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지금까지는 사람들에 떠밀려 입구 쪽에 서서 사진 한 장 남기고 발길 돌리기 바빴으니, 이 자리에 서 본 것은 아마 오늘이 처음이리라. 세월을 품은 돌 틈 사이로 자라난 누런 풀잎에 잠시 눈길이 멈췄다.

첨성대 뒷면. 천 년 전 이 자리에도 누군가 서 있었을 것이다. 그는 고개를 들어 빛나는 달을 바라보았겠지. 그리고 지금 나는 그와 같은 자리에서 달보다 눈부신 태양을 바라보고 있다.

문득 심장이 쿵, 하고 뛰기 시작했다. 천 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같은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이 낯설고도 벅찼다. 천년을 버텨낸 이 자리에서 그이는 달의 앞면을 보았을 것이다. 예전에 내가 첨성대 뒷면을 보지 못했듯이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유명한 잡지였던 ‘월간팝송’에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를 알게 되었다. 1973년 발매된 그들의 명반이 <The Dark Side Of Moon>이다. 앨범의 마지막 곡 ‘Eclipse’에는 유명한 내레이션이 흐른다.

“달에 진짜 어두운 면은 없어. 사실은 전부 다 어두울 뿐이지(There is no dark side of the moon really. Matter of fact it's all dark).”

첨성대 뒷면에 서서 떠오른 별스러운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우리가 ‘뒷면’이라 부르는 것도 결국은 바라보는 위치의 문제일 지도 모른다.

달도, 첨성대도, 어쩌면 삶 또한 그럴지 모른다. 햇빛에 반짝이는 앞면 뒤에는 언제나 과거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뒷면이 있다. 되돌아봐도 보이지 않는 달의 뒤편처럼, 어둠 속에서 묵묵히 지탱해 주는 무엇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내 삶의 ‘Dark side’는 무엇이었을까? 오십 줄을 재촉하듯 흘러가는 시간 한가운데 서 있으니 그 질문이 더욱 또렷해진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서 있는 첨성대 뒷면을 바라보다가 나는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정면이라 부르는 자리, 나 또한 앞면이라고 믿었던 곳에 다시 섰다. 별을 보려 여기에 서 있었을 옛사람에게도 과연 앞면과 뒷면이 있었을까. 아니면 그에게는 하늘을 향한 자리 하나뿐이었을까. 유적지 관리를 위해 만들어 놓은 입구 쪽을 정면이라 믿은 나는 이제 무엇을 보아야 할까.

달의 뒷면을 말했던 또 다른 사람, 장 그르니에(Jean Grenier). 그는 그의 책 <섬(Les Iles)>에서 고립되고 척박한 케르겔렌 군도를 하나의 메타포로 삼아 인간의 본질을 이야기했다.

“달은 우리에게 늘 똑같은 한쪽만 보여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 또한 그러하다. 그들의 삶의 가려진 쪽에 대해서 우리는 짐작으로밖에 알지 못하는데, 정작 단 하나 중요한 것은 그쪽이다.”

그 문장은 삶에 존재하는 고독과 쓸쓸함, 그 섬 같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다. 핑크 플로이드가 삶을 거대한 어둠의 동굴로 인식했다면, 장 그르니에는 그 고독 속에서도 끝내 동굴 밖으로 걸어 나오는 인간을 말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천 년 전 신라의 천문학자들은 빛나는 달의 앞면을 바라보며 계절을 읽고 삶을 가늠했을 것이다. 첨성대를 벗어나 천천히 들판을 걸었다. 노래 끄트머리에, 달은 전부 다 어둡다고 말하며 울려 퍼지던 핑크 플로이드의 심장 박동 소리가 첨성대 넘어 불어오는 바람결에 흩어져 사라졌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달의 뒷면이 있기에 앞면 또한 빛난다는 것을. 삶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둠 속에서 찬찬히 쌓아 올린 무언가가 있기에, 우리는 오늘의 밝은 하루를 걸을 수 있다. 그것이 고독이든 쓸쓸함이든, 내 곁을 따라 걷는 그네들이 건넨 손 맞잡고 나는 다시 삶을 걷는다. 빛과 어둠을 함께 품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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