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어쩔수가없다>를 보고
영화가 진행될수록 불쾌한 감정이 서서히 올라왔다. 메스꺼운 느낌에 집중이 쉽지 않았지만, 마음을 천천히 가라앉히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주인공 이병헌은 실직한다. 어렵게 올라선 중간 관리자의 자리에서 밀려난 그는, 풍족하던 삶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나서 괴이한 선택을 한다. 제지업계에 자신이 가고 싶은 자리를 가로막는 세 사람을 차례로 살해하는 것이다. 살인이 거듭되는 동안 그의 치통은 점점 심해진다. 마지막 범행을 앞두고 그는 결국 이를 뽑는다. 어쩌면, 범죄가 완성되기 전까지 남아있던 마지막 죄의식이, 바로 그 치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는 원하던 자리에 오른다. 영화의 첫 장면처럼 가족은 제자리를 찾은 듯 보인다. 그의 재혼한 아내는 남편의 범죄사실을 알게 되지만 침묵을 택한다. 자폐를 지닌 딸이 ‘Le Badinage(가벼운 농담)’을 연주하며 영화는 끝난다. 제목의 뜻처럼 이 영화는 인간의 무서운 욕망과 그로 인한 범죄를 ‘가벼운 농담’처럼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편치 않은 마음으로 극장을 나섰다. 왜 그토록 불쾌했을까. 아마도 타인의 자유와 생명을 빼앗는 일이, 개인의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부조리한 상황 때문이었을 것이다. 걷는 내내 나는 아프지도 않은 이를 만져보았다. 혹시 내 안에도, 아직 발치가 되지 않은 어떤 ‘치통’이 남아 있는 건 아닐까. 감독은 이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현대인이 잃어가는 죄의식, 그 치통이 사라진 자리엔 무엇이 남는가.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문득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떠올랐다. 천사 미하일은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미하일은 결국 그 해답을 ‘사랑’에서 찾고 하늘로 돌아간다. 어쩌면 이 영화는 블랙코미디를 빌려,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건 아닐까? 범죄를 저지르고 자신이 원하던 직장에 출근하여 기계를 두드리던 주인공, 그곳엔 그 자신밖에 없었고, 마침내 그 공간은 어둠에 잠긴다.
과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