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객사야

by 대니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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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편 자리에서 저녁을 먹던 친구 녀석이 불쑥 웃더니 한마디 내뱉었다. “내 꿈은 객사야. 여행 다니다가 길에서 죽는 거 말이야.” 그러고는 퇴직연금을 열심히 붓고 있다고 했다. 느닷없는 객사가 꿈이라는 친구의 말에 머릿속이 잠시 멍해졌다.

객사(客死). 객지에서 죽는 것. 객지는 자기 집을 떠나 임시로 머무는 곳. 그러니까 말 그대로 집을 멀리 떠나 객지에서 죽는다는 뜻이었다. 도대체, 여행하다 집 밖에서 죽음을 맞는다는 것이 꿈이라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가족들 뒷바라지하느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잊고 살았다며 허허 웃는 친구를 보며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막막했다.

객사라는 단어에 문득 이중섭이 떠올랐다. 마흔의 나이에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은 화가. 게다가 무연고자로 분류되어 시체안치실에 사흘이나 있었다니. 말 그대로 객사였다. 죽기 3년 전 일본에서 잠시 가족을 만났지만, 그게 아내와 어린 두 아들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1956년, 건강을 회복하고 짧은 ‘아름다운 시절’을 보낸 뒤 그림, 고독 그리고 병마에 시달리다 쓸쓸히 객사했다.

내 고향 통영에도 화가 이중섭의 흔적이 남아 있다. 6.25전쟁 당시 1.4 후퇴 때 잠시 제주도로 피란했던 이중섭은 1952년부터 1954년까지 약 2년간 통영에 머물렀다. 경남도립 나전칠기 기술원 양성소(통영시 항남동 241-2)에서 학생들에게 데생을 가르쳤다. 그의 대표작인 ‘황소’와 ‘흰소’ 등도 통영에서 그려졌다고 한다. 가끔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방랑자로 살아가다 객사한 이중섭을 떠올린다. 살아생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쓸쓸히 죽어간, 한국의 고흐라 불리는 화가. 그는 어떤 마음으로 죽어갔을까.

웃는 친구를 보며 나도 따라 가만히 웃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야 할 날이 더 짧은 지금, 존재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태아의 생명이 언제부터 인정되는가? 생물학적, 의학적, 윤리적 그리고 법적 관점에서 여전히 논의가 이어진다. 통상적으로는 수정 순간부터 생명의 시작으로 보지만, 생명권에 대한 법적 보호는 발달 단계나 사회적 합의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생물학적으로 조산하더라도 생존이 가능한 24주 이후에는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국가가 많은 것처럼. 그렇게 보면 생명의 시작은 어찌 되었든 엄마의 뱃속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자궁’이라는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사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모두, 태어난 그 순간부터 객지를 떠도는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자궁은 어쩌면 우리가 만난 첫 번째 고향이자, 마지막으로 돌아갈 수 없는 집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자궁에서 태어나, 이 세상이라는 객지에서 천천히 죽어가는 존재가 아닐까.

친구와 함께 술잔을 들고 건배를 한다. 나는 오늘도, 내일도, 현재를 살아가며 객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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