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펀지케이크 같은 나의 방

나만의 지하철 (3)

by 새초록

{지난 편까지의 이야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는 순간이면

나는 나만 탈 수 있는 상상의 지하철에 올라 회복의 여정을 시작해요.

그 지하철 한 칸에서, 젊은 날의 엄마와 마주 앉아 우리에게 있었으면 좋았었을 날들을 함께 살아봐요.

그리고 엄마에게 진실한 웃음을 보이며 발레리나처럼 나는 듯 다음 칸으로 미끄러져 가요.





스펀지케이크 같은 나의 방





창문 밖 빗줄기가 굵어지고 날이 흐려질수록 이 칸의 천장에 매달린 은은한 스테인드글라스 조명은 더욱 따뜻하고 밝게 느껴져서, 꼭 생크림이 발린 푹신한 스펀지케이크 위에 고깔 모양으로 얹은 무지갯빛 초콜릿이나 설탕 꽃 같아요.

나는 토슈즈를 벗어 작은 나무 신발장 한 칸에 가지런히 올려놓아요.

신발장에는 새 신발들이 짝 맞추어 나를 기다리고 있어요.

반짝이는 에나멜 구두와 빨간 장화도 있어요.


갓 구운 과자색 같은 마룻바닥을 천천히 걸으며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내 방을 구경해요.

맞아요. 나는 이런 방을 꿈꿨지만 가져보질 못했어요.

소공녀 세라의 친절한 이웃집 아저씨나 키다리 아저씨는 동화 속에서만 나타나니까요.


아마 그래서 더욱 동화 속으로 빠져들었던가 봐요.

이 방에는 내가 좋아하던 동화책들이 그대로 꽂혀 있어요.

지금은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모르는, 그 빛바랜 책들 말이에요.


물려받고 물려받아서 눅눅한 기운이 작가의 서명처럼 따라온 그 누런 종이들 틈에서 어린 나는 읽고 또 읽고, 상상하고 또 상상하곤 했는데, 그날들에 미래로 보내는 편지를 써놨던 건 아니었을까요.

“힘들 때면 이곳으로 찾아와”라고요.

나는 그저 우연히 탄 줄 알았지만, 그날들에 정확히 예약해놓은 나만의 지하철을 탔던가 봐요.









그렇다면 이 책장에는 이미 사라져버린 일기장들과 혼자서 끄적이던 시가 적힌 노트도 꽂혀 있을 거예요.

엄마가 된 후에 아이들과 같이 읽던, 반짝이는 코팅지의 그림책들도 함께 꽂혀 있지요.

거기에는 천사들과 신화 속 요정들과 난쟁이들과 회개한 탕자와 구두쇠 노인과 진짜 사람이 되고 싶은 나무 인형과 인어 공주와 난폭해 보이지만 사랑을 배워가는 단순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공룡들과 누에콩이나 도토리 같은 작고 반짝이는 존재들이 항상 나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래서 나는 혼자가 아니었어요.

언제부터 왜 혼자였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그날들에 나는 충만했음을 이제야 다시 기억하네요.





어느새 나는 사진첩을 펼치고 있지요.

그 사진들 속에는 내 옆에 날개 달린 천사도 있고, 양말 인형처럼 작은 요정도 있고, 푸른빛 원피스를 입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예쁜 엄마도 있어요.

거기에는 노란 우비를 맞춰 입은 작고 귀여운 내 아이들도 있고, 우산을 들고 마중 나온 남편도 있고, 자전거 뒷자리에 어린 나를 태워주시던 건강한 모습의 아빠도 있어요.

친절하고 부유해서 내가 없는 틈에 내 방에 진귀하고 이국적인 음식과 가구들로 마법을 부려놓은 양아빠도 물론 있지요.

나는 그분의 얼굴을 까맣게 잊어버리곤 해서 선명한 사진을 찾고 싶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흔들리며 찍힌 사진이 대부분이에요.


그렇지만 사진들을 보면 분명해지는 진실이 있어요.

나는 혼자가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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