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지하철 (7)
{지난 편까지의 이야기}
삶의 무게에 짓눌릴 때면 나만의 지하철을 상상해요.
그 지하철 한 칸에서 그대와 데이트 약속이 있어요.
그대와 나는 마법 열차 데이트 칸에서 만나요.
나이를 알 수 없는 그대.
우리 처음 만났던 시절의 청년 같기도 하고, 나이 오십의 중년 같기도 한 그대.
백발 같기도 하고, 얘기로만 듣던 빼빼 마르고 수줍으면서도 알고 보면 사고뭉치였다는 사내아이 같기도 한 그대.
내가 그대를 보는 것처럼 그대도 나를 보나요?
그대의 눈에는 나도 대학을 갓 졸업한 풋내 나는 애인 같기도 하고, 어느새 더위를 잘 타는 갱년기를 앞둔 아내 같기도 하고, 밥 짓는 냄새와 함께 떠오르는 정다운 노모 같기도 하고, 얘기로만 듣던 통통하고 맏딸다우면서도 알고 보면 울보 계집아이 같기도 하나요?
그대의 역사와 나의 역사가 한 데 만나 흘러가는 와중에, 설레는 순간이 에피타이저처럼 디저트처럼 때때로 있었으면 좋겠어요.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수줍어하고, 재밌어했으면 좋겠어요.
그대는 나중에 고백하기를, 연애 초에 같이 크림 파스파를 처음 먹었을 때 너무 느끼해서 토할 뻔했다며 웃었지요.
지금쯤 그대도 이미 알겠지만, 나는 된장국이든 곰탕이든 국물 요리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그러면 우리 마법 열차에서 데이트하면서는 미래에서나 유행하고 있을 된장파스타를 시켜요.
그대는 느끼함을 잡아주는 된장에 감사하고, 나는 영화에서나 보던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전원 풍경이 창밖으로 펼쳐지는 이 뷰와 우리 맞은편에서 연주되는 재즈 음악에 설레는 거예요.
그대는 케이크와 와인을 주문해요.
그러면 나는 오늘이 무슨 날이냐고 묻죠.
이 사람, 프러포즈라도 하려고 그러는 걸까 생각하면서.
그러면 그대는 오늘이 결혼 20주년이라고 말해요.
나는 깜짝 놀라서 그대를 쳐다봐요.
시간이 정말 너무 빨리 흘러갔구나 하면서요.
이 날들도 흘러가겠죠.
돌아보면 너무나 빨리 흘러갔구나 생각 들겠죠.
그러니 우리 어떤 때라도
흐르는 생명을 가로막지는 말고
서로의 길을 터줘요.
이 사람 놓치면 더 좋은 사람 못 만날 것 같았다는 그때의 그대.
이 사람 없으면 아이들을 끌어안고 눈보라 속을 헤맬 것만 같은 지금의 나.
우리, 여기서 만났으니, 서로의 눈을 그윽하게 보면서 손을 잡고 동그란 용기를 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