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 막차 타고 호주까지 온 이유는
한국이 좋아서, 나는 지금 막차를 타고 호주로 왔다.
이십 대 초반에 많이 가는 호주, 서른이 넘어 막차 타고 온 이유는 한국에서 더 잘 살고 싶어서. 더 많은 기회를 누리고 싶어서.
일을 한 지 5년이 넘었다. 대학교 졸업과 함께 일을 시작하며 직장인이라는 이름으로 5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서, 서울에서, 회사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새로운 기회를 얻기도 또 많은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누구나 그렇듯 즐겁기도, 슬프기도, 우울하기도, 힘들기도 했다. 마지막 직장에서는 너무 열심히 일해서 출근길 버스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번아웃을 겪기도 했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 우울해하는 보어아웃이 오기도 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상담도 받고, 병원도 가보는 별의별 경험을 끝낸 후. 결심했다.
내 인생 인풋이 필요하다.
채워지는 것 없이 빠져나가기만 하는 통장처럼, 내 삶도 채워지는 것 없이 빠져나가기만 하는 중이었다. 특히 일을 할 때, 부족한 시간 속에 얼마 있지도 않은 갖은 것들을 회사를 위해 쓰는 느낌이었다. 체력, 정신, 감정을 써가며 일을 했고 아웃풋을 만들어야 하지만 인풋 없이 매일 무언가를 억지로 꺼내 조립하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말이 잘 안 나왔다. 자주 까먹었다.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랬는지 하고 싶은 말이 조리 있게 제대로 나오지 않고 더듬더듬 나왔다. 엄마는 가끔 "넌 뭘 그런 거까지 기억하니?"라고 할 정도로 세밀한 기억력을 가진 나였는데 가끔 깜박하기도 했다. 이것이 징조였다. 이미 바닥에 가까워진 상황인데 자꾸 무언가를 꺼내려하니 말이다.
그 기억으로 지금을 사는 거예요.
점차 증세가 나타날 때쯤, 내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의 기억으로 지금을 살고 있다고. 현재 삶이 힘들 때, 무료할 때 그때 경험하고 추억한 기억을 떠올리며 산다는 것이었다. 헉.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이 너무 부러웠다. 분명 나란 사람이 만든 내 인생에서 다른 추억으로 나 또한 살고 있지만. 단 한 번도 해외살이를 해보지 않은 나는, 경험해 보지 못한 그 기억이라는 것이 부러워졌다.
지금이 힘들던 내게 꺼낼 볼 수 있는 또 다른 추억은 미래의 나를 더 살게 하지 않을까. 환경을 미치도록 바꾸고 싶다 외치던 내게 해외살이라는 답은 매력적이었다. 조금씩 그렸다. 한국이 아닌 곳에서 살고 있는 모습.
그리고 돌아봤다. 인생에서 놓친 여러 기회들. 영어를 못해서 놓친 기회들 말이다.
한국에서만 살 건데 뭐
그렇게 생각했다. 다른 강점이 있으니까. 직무 경험을 더 쌓으면 되지.라고 패기 있던 어린 시절 생각했다. 실제로 영어를 못해도 취업할 수 있고 평범하게 잘 살 수 있었다. 한국이 좋은 난 한국에서만 살 건데 영어를 그렇게 잘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겪은 세계에서 영어는 중요했다. 내가 더 다가가고 싶은 세상은 영어를 잘해야 한국에서도 더 잘 살 수 있었다. 일 잘하는 사람들과, 더 넓은 세계에서 일하려면 영어는 기본이었다.
가끔 선물처럼 찾아온 기회들, 그때마다 들은 말은 "영어는 잘하니?"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데 스포츠가 너무 좋아 스포츠 산업에서 일하고 싶어 했던 내게 기회는 몇 번 왔지만 준비되지 못한 자이기에 잡지도 못하고 날린 적이 몇 번 있었다.
왜 나는 영어를 못해서 놓쳐야 하지? 아니 왜 놓았지? 근데 지금 가도 될까? 너무 늦은 거 아닐까? 이제 서른둘인데. 다들 회사 다니며 돈도 모으고 결혼도 하는 지금, 이렇게 떠나도 될까? 내 시간을 이곳에 써도 되는 걸까? 이 결정이 내게 안길 결과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만, 더는 놓치지 말자
그거 알잖아. 할머니가 돼서 상상해 보자고 했잖아. 이제 삼십 대, 적어도 너무 적은 나이인데 사회가 만든 나이에 갇혀 고민만 하다 하지 못했을 때. 미래의 내가 지금을 돌아보면 얼마나 후회스러울까?
더는 놓치지 말자. 영어, 지금 잡고 가자. 그래 지금 내게 미치도록 필요한 인풋은 영어다.
이렇게 모노드라마를 몇 편도 아닌 몇 십 편을 찍어가며 영어를 잘하기 위해, 한국에서 더 잘 살기 위해 떠날 결심을 먹고 있었다.
이제 우리 막차래
운명인가 봐. 만 30세는 워킹 홀리데이를 신청할 수 있는 마지막 나이었다. 즉 막차라는 거다. 워홀은 남의 얘기로만 치부했기에 만 30세까지만 가능한지도 몰랐던 나는 해외에 사는 친구에게 전해 듣고 서야 알았다.
그래, 빼도 박도 못하는구나. 이제 떠나야겠구나!
누가 내게 왜 호주에 왔냐 물으면, 난 이렇게 답한다.
한국이 좋아서,
한국에서 더 잘 살기 위해서 왔어요.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를 남의 이야기처럼 읽던 때가 생각난다. 아, 이런 세계도 있구나. 그럼, 여기서 살기 싫으면 갈 수 있지.라고만 생각하던 난 지금 그 모습이 현실이 되어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 좋아서, 미래에 내게 위로가 될 장면을 만들기 위해 호주로 왔다.
- 이제 두 달을 보낸 워홀러가, 빅토리아 도서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