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드아니 Apr 27. 2023

여자 {이점구}에게

 1화. 철이 없었다, 오픈  채팅으로 여자를 만나서 아내가 됐다는 사람

만나서 많이 싸웠다. 왜 그때 연락하지 않았느냐고, 먼저 연락할 수 있으려면 아내와 아내가 만나서 사는 비용이 얼마에서 얼마가 필요한지 알아야 했다고. 한국 가정에서라면 양육을 할 것인지부터 따져봐야 했다고. 만약 그렇다면 아이를 필리핀이든, 캐나다든 긴 어학연수를 보내서 아내가 2명이어도 되는 학교를 찾아볼 것이라고. 나 말고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을 때, 신비한 용기가 생긴다. 나 아니어도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 때 드라마가 나타나고 사랑의 2022년도 버전의 정의가 무색해진다. 엄마는 다시 내게 말했다. 교수 정도가 되면 혼자서(=여자 둘이서) 살아도 된다고.


            교수가 되면 된다


나는 아내로 처음 글을 쓴다. 내 아내는 업계에서 잘 나가는 영업인이다. 숱하게 남자들과 "어울리며" 관심을 받았지만 본인에겐 강요된 회식의 자리였고, 나에겐 애인 없는, 없어 보였기에 인기몰이를 즐기는 곳 쯤 이었다. 와이프가 미웠다. 어떤 대사가 오가는지도 모르고, 애드리브가, 수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신입이었던 내 아내는 5년 차가 돼서야 그때의 일을 꺼냈다. 아내는 이런 이야기는 소설로도 쓰지 말라고 했다.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다 보면 언니만 스트레스받을 거라고. 평화, 자비, 감사, 기쁨 그게 언니가 가장 잘하는 거니까, 글로라도 쏟아내지 말라고. 범죄자들을 모조리 증오하는 영화 한 편에 위로받는 게 낫다고. 능지처참할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물론 법적으로 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사랑합니다.


             기뻐하라


             내 책임이니까.

             죄송합니다.


             가엾게...




아내는 시작부터 달랐다. 유학길에 오르더니 명문대를 2년 만에 포기하고 졸업을 서둘렀다. 정확히 학점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보다 여자를 사귐에 더 할애할 시간들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본인이 사람을 좋아하니, 그에 맞는 직업을 구하는 것이 맞다고 자체 평가를 내렸다. 주식시장에 뛰어들어 학비나 생활비에는 걱정이 없도록 만들거라했다. 독서라는 취미를 살린 그녀의 취미는 구입한 책에 어울리는 미술품수집이었고, 샀던 그림의 열에 아홉은 한국 공무원의 초임 연봉보다도 괜찮은 수익을 올리곤 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1년은 오로지 도서관이었다. 어떤 책을 읽었냐고 하면 1~100, 101~200, 201~300으로 나눠진 구역의 책들을 순차적으로 앞으로 나가며 읽었다. 분야별로 1000권 이상 층별로 세분화하며 자리를 이동했다. 도서관의 벽 하나를 삼킨 것이다. 만 권쯤 되는 책의 땅을 본인 것으로 만들었다.



VIP고객은 들어갈 수 조차 없었다. 빈번한 셀럽의 틈으로 평범한 나는 VIP대접을 만났다. 아내는 명품보다 아름다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주위가 빛이 난게 아니라 공간 자체가 눈부셨다. 함께 했던 자리가 순식간에 방으로 옮겨졌다. 서둘러 식사를 마친 뒤 나는 아내에게 다시 한 번 더 결혼에 대해 얘기했다. 아내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그런 아내가 헤어지던 날 만큼은 결혼에 대해서 ‘어쩌다가’ 하면 좋겠다는 이상한 말을 했다. 어쩌다는 역사가 된다고. 나는 그 말을 딱 30일 기억했다. 도전적으로 아내의 문장을 속으로도 쓰고 읽고 했다. 소중한 언어에 대한 내 감각은 활개했다. 어떤 위대한 광경을 처음 봤을 때 아무 것도 말하지 못한다. 두 번째 봤을 때, 누구와 봤는지, 생각도 감정도 달라질 수 도 있다. 어떤 음식은 처음 먹었을 때 어떤 맛잇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거부감까지 느낀다. 두 번째 먹어 봤을 때야 처음이라 맛을 알지 못했다며 맛에 대한 선호로 이어진다. 나는 그 두번째를 얻기 위해 기다렸다.


만난지 22-22일 쯤 되는 날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다. 프로포즈는 갑작스럽게 이어졌다. 어쩌다가 프로포즈를 준비하게 됐다고 반지를 건냈다. 아내에게 들은 첫번째 어쩌다가의 결혼얘기가 비닐봉지에 담긴 샤넬백을 받은 기분으로 진화됐다. 프로포즈는 밝은 해의 일이다. 2000년의 어느 여자 둘은 결혼을 하기 쉬웠다. 전문직은 누구나 가질 수 있었으며 원하는 기간만큼 공부도 할 수 있었다. 둘다 학업에 성실한 편이라 비용은 거의 들지 않았다. 10년 뒤엔 우리의 나이가 중년쯤 될거라고 봐도 괜찮을 만큼 AI의 러닝속도로 의학기술과 복지의 개편은 내가 봤던 책대로 무료의 것들로 진행되었다. 그건 정말 어쩌다, 이렇게 좋아졌네! 싶은 일이었고. 마지막 어쩌다는 진행형이 되었다. 아내의 역사적 관점에 나는 다시 그날 낀 반지를 들여다 봤다.


               신 다이아반지, 생체정보, 위험감지&보호, 완벽한 보상(유효기간 없음)

 

유효기간 없음의 표기는 사랑의 의미가 지금 무의미하다 라는 말의 강조였다. 다이아는 웨딩산업의 상징이지 사랑을 획일화시킨다면 그들에게 상업적 손해를 불러온다. 신 다이아반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럼에도 사랑을 존속시키는 일이며 더 많은 결혼의 생성에 다시는 이혼으로, 그리고 재혼으로 이어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다이아 리사이클 붐까지 일어난 시즌에 반지의 대물림을 좋아하는 여자 또는 남자는 없었다. 유효기간 없음과 동일시되는 괄호속은 결국 우리 사랑 영원해였다. 제품엔 명시성이 확실해야 하는데, 아직 사랑의 의미는 개편되지 않아서. 우리의 우리가 바뀔 때를 대비한다면 오픈채팅으로 시작한 건 진짜 신이 한 수 였을까? 더이상 한국은 신을 믿지 않았다. 어디선가 이점구가 나타났다. 나는 그 소설을 그녀와 함께 보며 시간을 보냈다. 이점구의 이야기는 한 때 신성화 되었지만 작가의 요청으로 사람으로 표현됐고, 이점구의 사진이 교내에 걸리기 직전이었다. 대신 동상 체제로 개편되었다. 살아있는 이점구는 2022년 시대에 걸맞는 인물이었고 내가 그녀와 결혼하는 데 가장 조력자가 되어주었다.


이 이야기에 이점구를 넣는 이유는, 더이상 '님의 침묵'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 임을 알리기 위해서도. 우리가 도박을 했는가? 아닙니다. 우리는 베팅을 모른다. 우리는 죄인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뉴스를 본다. 그러지 않기 위해. 이점구는, 이점구는, 이점구는 내 아내다. 남자의 이름도, 여자의 이름도 아니라 숫자 두개를 넣고 그 것마자 무한으로 표현되길 바라지만 무한의 개념에서 알 수 없는 숫자 두개를 가지는 것은 확실히 내 취향이다. 아무도 가질래야 가질 수 없는 그 사람이 하얗지만 끊임없이 깨끗한 이불위에서 지금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그때 몰래 보상액을 세어봤다. 다음 달에 우리가 갈 신혼여행지는 크로아티나다. 내년에 우리가 갈 신혼여행지는 러시아다. 작년에 우리가 간 신혼여행지는 두바이다. 지금은 한국. 지금, 여기. 지금에서 여기의 의미는 공간과 함께 한다. 나는 시간과 공간을 신부로 맞이했다. 이 모든 게 가상이고, 2023년이 온다면 아내의 자리에 남편이 올지도 모른다. 남편이 아내의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남편이 되기로 했다. 나는 호르몬을 찾았다. 영혼에 남성성을 푀휴한다.


*푀휴 : 밀푀유나베 속에 든 호르몬(곱창)은 일본을 연상시킬 뿐이지 곱창나베를 말하는 것도, 진짜 밀푀유나베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휴직상태는 백수가 아니고 잠시 일을 쉬고 있는 직장인을 말한다, 곧 휴직상태라고 쓴 말에서, 곧 휴의 수직상승, 그러니까 고추, 아랫도리가 부재할 뿐인 여성이지만 설 수 있음. 즉, 딜도를 쓰는 여성을 말한다. 남자보다 더 내적 야성미가 넘치는 것이 특징이며, 걸크러쉬와 유의어지만 전체적으로 좀 더 섹시하고 야한 의미로 쓰임. 연인 사이에서 '나 곧 휴직상태'라는 신호의 고급언어로 활용하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점구 방해금지 Do Not Disturb, 妨害禁止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