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조각

by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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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곡하게 피어난 벚꽃 사이로 작은 하늘 조각이 보인다. 벚꽃은 하늘의 일부가 된 걸까. 하늘이 꽃의 일부가 된 걸까. 하늘에 벚꽃이 수놓아진 걸까. 고개를 들어 볼 수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 하늘이 될까.


늘 그렇듯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러 몇 번의 봄을 거쳐 다시 또 봄이 찾아왔다. 벚꽃이 가득한 이 하천을 걷게 된 것은 내가 제법 어른이 됐다는 뜻이었다. 처음 취업을 하면서 집에서 나와 살게 되었고, 하천을 마주했다. 서울 도로에 심어 있는 나무들은 아주 두터웠고, 벽 같았다. 내가 들어올 자리 따위는 없다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 수도권에서 나고 자란터라 서울이 아주 낯설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나의 거처를 옮기는 일은 아주 다른 일이었다.


서울 풋내기가 이사 와서 가장 무서웠던 건 이웃이었다. 이사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 부모님 차량을 잠시 집 앞에 대놓았는데, 밑도 끝도 없이 전화를 걸어 경적을 계속 울리는 게 아닌가. 험상궂게 생긴 그 아저씨는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본질적인 문제를 제공한, 주차 자리도 하나 없는 빼곡한 빌라 무더기 동네가 싫었다. 이사 첫날부터 살기 싫어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았다. 따뜻한 부모님 품 안에 있는 아파트에 살 때는 몰랐는데, 빌라에서는 같이 사는 사람의 형체가 드러나곤 했다. 방음이 되지 않는 얇은 문 사이로 듣고 싶지 않은 소리가 새어 나온다. 알고 싶지 않은 다량의 정보에 몸부림쳤다. 옆집에서 야근이라도 하고 와 새벽에 라면이라도 끓이면 덩달아 배가 고파졌다. 뉴스에서는 빈번하게 범죄 소식을 알렸고, 우리 동네의 지명이 언급되면 벌벌 떨었다. 그러나 이런 무서운 동네에 적응하기도 전에 사회 초년생에게 벅찬 주어진 일은 쏟아져 내렸고 가혹했다. 다른 생각 할 겨를을 만들어 주지 않는 탓에 나는 어느새 서울에 스며들어 있었다. 벚꽃길을 걸으며 회사에서의 실수를 곱씹었다. 흘러가는 하천을 보며 날마다 마음으로 울었다. 집에 가도 위로해 줄 사람이 없다는 건 밖에서 다 털고 가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집도 비좁은데 우울한 마음마저 욱여넣을 공간이 없다. 어느 날은 이상하게도 옆집의 라면 냄새가, 윗집의 알람 소리가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흘려보내듯 2년을 살아서 어느새 또 다른 집으로 이사 가야 할 때였다. 내 집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개탄스러운지. 수십 번 왔다 갔다 하며 집을 보러 다녔다. 우리 집에도 손님맞이를 하느라 바빴다. 다시는 못 볼 집이라 좋게 보내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담아 열심히 쓸고 닦았다. 부동산 중개자가 손님을 데려왔다. 내 나이 또래거나, 나보다 어려 보이는 여성분이 오셨다. 좁은 집에 세 사람이 있자니 집이 꽉 들어찼다. 구석구석 확인 할 줄도 모르고 남의 집이라 예의 차리는지 우왕좌왕하느라 자세히 못 보는 게, 꼭 예전의 내 모습 같았다. 집은 별로 좋지 않을지라도 여기 근처에는 벚꽃이 예쁘게 피는 아주 멋진 하천이 있다고 그녀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이사에 필요한 몇 개의 일정을 끝내고 여유로운 저녁을 보낸다. 어려운 대출 서류를 해내고, 부모님이 가입해 준 보험이 만기가 되어 새로 가입했다. 프리랜서인 덕에 건강 보험료 요금이 멋대로 올라, 정리를 했다. 세상에는 작고 사소한, 복잡한 일로 가득 들어차 있다. 알아가면서 뿌듯한 마음, 알게 되면서 서운한 마음이 공존한다. 그런 일들을 해결하고 스스로 대견해하고 있었는데, 생각지 못한 연락이 왔다. 내 실수로 인해 무언가 누락됐다는 것이다. 아, 크고 작은 실수가 나를 괴롭힌다. 아직도 나는 너무나도 서툴다. 순간 자책하는 마음으로 들어찼지만, 과거에 더 미숙했던 나를 돌아본다. 인간에게 완벽이란 없고 성장의 끝도 없다. 다른 꽃도 아니고 벚꽃이 좋은 이유는 순간의 아름다움이 찬란하기 때문이다. 하늘에 흩날리는 봄 눈의 황홀함을 누구나 좋아한다. 순간의 아름다움을 위해 애쓰는 벚꽃처럼 서툰 나도 그런 날을 꿈꾼다. 반짝할 그런 날이 올 거라고.


벚꽃 길을 걸어본다. 잊을 수 없는 벚꽃 길이다. 더 이상 이 동네가 무섭지 않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할 수 있다. 봄이면 하천을 따라 길게 줄지어 서 있는 벚꽃 길이 좋다. 예상치 못한 곳에 숨어있는 작은 술집과 카페들. 옛날 주택을 이어 붙여 만든 조그맣고 정다운 도서관. 사람 손을 타지는 않지만 매번 마주치는 익숙한 얼굴의 길 고양이들 까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안녕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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