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미치도록 그리운 하늘이 있다. 그 장면은 머릿속에 한 컷의 사진처럼 남아있다. 그때 기억이 정말로 강렬해서 머리 한 켠에 남아있는 건지, 아니면 상상으로 떠올리는 건지 헷갈린다. 가끔은 미치도록 그리운 친구가 있다. 정말 가끔, 가끔이다. 가끔 그리운 시절이 있다. 벌써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게, 다 커버린 걸 까봐 무섭기도 하다.
난 하늘에 큰 의미를 두는 사람이었다. 누군가를 만날 때면 무조건 하늘이 맑아야 했다. 그냥 맑기만 하면 되는 건 아니고 하늘 색깔의 농도, 채도도 내 마음에 쏙 들어야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날도 그냥저냥 잘 놀기는 했지만 하늘이 마음에 드는 날이면 좋은 기분이 배로 늘어나곤 했다. 특히 여행을 가는 날이면 어찌나 날씨에 의미를 부여했던지. 내 곁에 있는 누군가가 ‘날씨 요정’이라며 운이 좋기를 바라곤 했었다. 날이 좋으면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이 손해 같아 누구든 붙잡고 산책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렇게 줄곧 바깥으로 나가는 나였는데, 이제는 날씨가 좋아도 나갈 맘이 없어 창문으로 바라보고만 있다.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걸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없는 걸까.
얼마 전, 연락하지 않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한 지 오래되었고, 친했을 적에도 전화를 자주 하지 않던 친구여서 고민이 되었다. 무슨 일일까? 받을까? 말까? 긴 신호를 보내고 전화를 받았다. 결혼한다는 전화였다. 반가운 마음도 어느 정도 있어서 살갑게 대해주고 통화를 이어가는데 마침내 할 말이 없어 우리 사이엔 긴 공백이 생겼다. 그 친구도 아주 용기 내서 전화했겠지만, 나도 받는 데 용기가 필요했다. 우리가 힘겹게 낸 용기가 무색하게 전화는 빨리 끊겼고 그런 느낌이 들었다. 결혼식이 끝나면 볼 일은 없을 거라고. 모바일로 받은 청첩장엔 아주 행복하게 웃고 있는 친구가 있었다. 고민 끝에 친구의 결혼식장에 갔다. 친한 친구 중엔 아무도 결혼식장을 같이 갈 수 있는 아이가 없었다. 외로운 자리가 될 것 같았는데, 막상 가니 제법 아는 얼굴들이 있어 그 사이에서 밥을 먹었다. 그간엔 딱히 궁금하지 않았을 서로의 안부를 이제야 물었다. 어떻게 지냈어? 그랬구나. 잘 지냈구나. 누구는 어떻게 산대, 누구는 어디에 들어갔대. 걔는 결혼했다더라. 아 그래? SNS에서 본 거 같아. 의미 없는 안부의 나열이 끝나고 정적이 맴돌았다. 어색함이 느껴질수록 애꿎은 포크 질만 열심히. 뷔페 음식을 쉼 없이 퍼다 날았다. 집에 오는 길에 체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멀어진다. 이런 좁아지는 인간관계가 어쩐지 나쁘지 않다. 그때만의 찬란한 추억으로 남겨두는 게 좋다. 괜히 어쭙잖게 들춰보았다가 빛이 들어간 필름 사진처럼 타버리고 말 테니까. 결혼식장에서 나오니 날씨가 아주 좋았다. 괜히 추억을 읊어본다. 해가 쨍쨍하던 날 땀 흘리며 만두 하나 먹겠다고 매점까지 뛰어갔던 일. 무한 다이어트 1일 차에 선선한 바람 맞으며 운동장을 뱅글뱅글 돌던 날. 강원도로 간 여행에서 비가 엄청나게 내린 뒤 무지개가 떴던 날. 이 무리의 날씨 요정은 누구 인가로 다퉜던 일. 수영을 또 하고 또 하고 마침내 등판에 생겨버린 까만 자국을 보고 웃었던 일.
그래그래. 오늘도 해가 쨍쨍하고 날씨가 참 좋다. 건너편 도로에 학생처럼 보이는 소녀 무리가 까르르 웃으며 거리를 지나갔다. 웃음이 햇빛에 빛나는 듯했다. 찬란하게 아름다웠던 우리의 시절을 뒤로하고 앞으로의 행복을 빌어주기 딱 좋은 날이다. 나의 추억 속에 있는 모든 그대들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