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그 도시의 겨울 하늘은 여유로우며 분주하다. 도시에 매료되어 하늘을 잠시 잊으면, 머리 위로 직선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이 모습은 각자 다른 비행기가 만들어 낸 모습이다. 막상 지나가는 비행기를 관찰하는 일은 드물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땅 위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아래로 하고 여유롭게 비행한다. 아주 몰래. 비행기는 아주 천천히 소리 없이 지난다. 저 비행기에는 누가 타고 있을까. 생애 첫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 살던 곳이 싫어 도피성으로 떠나는 사람? 공부하러 유학길에 오른 사람? 누가 됐든, 하늘에 그림을 그리며 나아가는 자들이 부럽다. 하늘 위 비행기와 설렘의 시차가 느껴진다.
언젠가 실시간으로 전 세계의 비행기를 볼 수 있는 사이트를 본 적이 있다. 셀 수 없이 무수한 비행기가 노트북 모니터만 한 지구를 기어다녔다. 땅에 있는 개미처럼. 이렇게나 비행기가 많은데, 나는 가지 못하는 게 슬펐다. 화면 안에서는 한 뼘의 거린데 나에겐 멀고도 멀었다.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만, 또 다른 세계였다. 대학교에서 진행하는 교환학생, 어학연수 따위를 가지 못한 나는 해외에 대한, 특히 영어, 불어 등을 쓰는 나라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내가 보는 브이로그 컨텐츠들도 자유여행, 어학연수, 해외 한 달 살기 등으로 채워졌다. 그렇게 가고 싶으면 떠나면 되는데 그 용기 내기가 그렇게 어렵다. 남들은 부모 돈으로 혹은 부모님과 함께 척척 다니는 해외를 나는 그토록 갈망했다. 어렸을 적 딱 한 번 호주와 뉴질랜드에 간 적이 있다. 동생은 그림을 잘 그렸다. 당시 유치원생이었던 동생은 어느 대기업 그림 대회에서 대상을 받아 해외여행 티켓을 받았다. 덕분에 아주 흐릿한 기억 너머로 호주의 오페라하우스와 뉴질랜드의 캥거루를 남길 수 있었다. 그마저도 인상 깊은 몇 장면 빼고는 기억에 없다. 내 기억은 이런데, 유치원생이었던 동생의 기억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다. 한 번도 비행기를 타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것도 배부른 소리 같겠지. 그래도 나는 남들이 하는 거라면 다 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었다. 훗날 무당이 엄마에게 동생은 그림을 그려 외국으로 나갈 거라고, 그런 이야기를 했더랬다. 동생이 제발 외국에 나가서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내가 어찌저찌 한번은 그 집에 얹혀 해외살이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 무당이 내가 서른이 되기 전에 운전하면 큰 사고가 날 거라고 하기도 했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기를. 아무튼 아르바이트로 뼈 빠지도록 돈을 모아 그토록 가고 싶던 유럽을 가게 되었다. 어느 시점에 어떻게 가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용기를 낸 건 오로지 유학 간 친구 덕분이었다.
모든 게 새로웠다. 우리나라와 다른 이국적 길거리 풍경에 신이 났고, 식료품을 사러 간 마트 구경은 어찌나 재밌던지, 낯선 땅에서 한 달 정도를 지냈을까. 친구와 나의 사이가 권태로워졌다. 정확히는 친구가 권태로웠다. 친구는 몇 달간 공부에 몰두하느라 온전한 쉼을 찾고 싶어 했다. 내향형이라 그 쉼을 밖에서 찾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여행은커녕 집 앞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소리쳤다. 이렇게 방에 박혀서 휴대폰만 바라보는 건 한국에서도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너는 이 먼 곳까지 와서 도대체 뭘 하느냐고. 그런데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 거라고. 일상을 살다 보면 특별한 공간은 없다고. 그리고 밖은 너무 춥다며 무기력하게 엎어졌다. 나는 설렘을 가득 안고 온 여행이지만 친구에게는 그저 일상을 이어가는 또 다른 자신의 공간일 뿐이었다. 어디에 살든 어떻게 사는 건지가 중요한 거라고.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이면 신기하고 설레겠지만, 그것도 익숙해지면 다 자신이 사는 공간이 되는 것뿐이다.
파리에서 멍하니 비행기가 하늘에 남긴 자국을 바라본다. 더 이상 하늘 위의 비행기를 부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외에서 살아보는 로망도 없어진 건 아니다. 세상에는 아직 내가 모르는 풍경과 겪어보지 않은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도 마냥 해외의 삶을 동경하지는 않게 되었다. 어디서든 잘 사는 게 중요하지. 내 방식대로 멋지게 살다 보면 가고 싶은 날 훌쩍 여행을 떠나게 되는 그런 날이 올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