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내게 특별했다.
유난히 할머니가 보고 싶은 날이 있다. 추워지면 특히 그런 것 같다.
추운 날 따뜻한 호빵처럼, 할머니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할머니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빠가 어렸을 때 아빠의 형이 일찍 돌아가시면서 아빠는 장남이 되었다.
아빠에게 나는 첫째 딸이다. 최 씨 가문의 장손녀다.
그런 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특별했다.
할아버지는 내가 중학생일 때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오래오래 사셨다.
내가 결혼해서 셋째 아들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던 날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지도 벌써 10년이 되었다.
어릴 적에 할머니는 내 생일마다 떡을 해서 집에 가지고 오셨다.
10살이 될 때까지 떡을 해 먹여야 건강하다고 믿으셨다.
초등, 중등, 고등학교 졸업식, 그리고 대학교 졸업식에도 할머니는 참석하셨다.
겨울의 추운 날 한복을 입고 참여하셔서 졸업사진에 있다.
95학번, 대학에 입학하던 해, 전산과에 입학했다. 컴퓨터가 갖고 싶었고, 필요했다.
그 당시 삼성 매직스테이션, 그게 최고였다.
부팅디스크를 넣고 부팅을 시키던 그 시대, 그때 우리 집은,
다양한 위기들로 가정형편이 그다지 좋지 않을 때였다.
그때도 할머니는 내가 기죽을까 봐, 최신 사양의 컴퓨터를 가질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때 가격이 300만 원이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할머니는 나 때문에 삐지면 종종 그 옛날 300만 원짜리 컴퓨터도 사줬노라고 자주 이야기 하셨다.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울 때도 할머니는 엄마처럼 자주 내 안부르 묻고 전화를 했다.
연년생을 낳아 키우다 보니,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할머니 안부를 챙기는데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할머니는 집으로 전화를 했다.
" 너는 오줌 눌 시간도 없냐?" 하고 전화를 끊었다.
화장실 갈 시간 정도는 내서 할머니한테 안부를 물으라는 의미였다.
자금 생각하면 그래 그 정도는 할 수 있었을 텐데, 싶지만 그땐 너무 힘들었다.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할머니집 마당에서 김장을 했다. 부여에 살고 계셨는데,
부여는 마을 사람들이 품앗이로 돌아가면서 서로 김장을 함께 한다.
어느 해였다. 김장을 하던 날,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다 같이 김장을 했는데,
할머니가 옆에서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셨다. 듣고 있다가 엄마가 한소리 했다.
"어머니는 가만 좀 계셔요. 뭘 옆에서 그렇게 잔소리를 하시고 그랴" 그 순간에 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할머니는 우리 어릴 적에 울 엄마 시집살이 엄청 시켰다면서, 아직도 그러셔?"
앗차 싶었다. 할머니가 크게 화가 나셨다. 거기서는 암말 안 하셨는데, 김장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고 그다음 날 전화를 하셨다.
"너는 내가 얼마나 너를 챙기는데, 네 엄마 편만 들고 그러냐? 니 대학 갈 때 컴퓨터도 300만 원짜리 사줬는데, "
아. 그놈의 300만 원짜리 매직스테이션. 오래도 간다. 싶었다.
그냥 할머니 죄송해요. 하면 되는 것을 "할머니 그 컴퓨터 얘기는 언제까지 하실 거래?"라고
반문을 하고 말았다. 그 후로 한참 할머니가 연락이 없었다.
결국에 나는 한참 후에 먼저 할머니한테 전화를 해서 죄송하다고 했다.
할머니랑 나는 그렇게 티격태격 애증의 관계로 지냈다.
2015년 구정 때, 할머니를 모시고 목욕탕에 갔다. 그해 할머니 나이 87세였다.
명절에 함께 모이면 연휴 마지막날엔 우린 같이 목욕탕에 갔다. 그해도 여전히 그랬다.
온탕 한구석에 앉아 있던 할머니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마지막 모습이었다.
우리가 함께한 마지막 목욕탕, 그 후 일주일 뒤 할머니는 무릎에 생긴 염증이 폐로 가면서 패혈증으로 숨쉬기 힘들어지셨고, 그렇게 세상을 떠나셨다.
할머니 임종을 보러 빨리 오라는 전화를 받고 가는 내내, 태어나서 그렇게 많이 운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눈물이 앞을 가렸다. 모두가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자 할머니는 편안히 눈을 감으셨다.
"할머니 내가 진짜 고마웠어. 제일 좋은 컴퓨터 사줘서 너무 고마웠어. 그리고 이쁘게 말 안 해서 미안해,
사랑해 할머니, 내가 평생 잊지 않을 거야"
할머니의 귀에 바짝 다가가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할머니가 내게 주신 사랑만큼 내가 과연 그 누구에게 줄 수 있을까? 그 크신 사랑으로 이만큼 살아가고 있음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그 후로 한참을 목욕탕만 가면 탕 속에서 눈물이 났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순간순간, 운전을 하면서도 순간순간, 뭐라고 혼내는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왔다.
지금도 가끔 사무치게 그리운 할머니 잔소리!
매직스테이션 300만 원짜리! 고모, 작은 아빠한테 받은 용돈 모으고 모아서 나 컴퓨터 사준 거였다.
살아계실 때 더 많이 감사표현하고 더 많이 안부전화를 할걸, 후회는 이미 늦은 거였다.
죽음과 상실을 그렇게 어른이 되어 경험하고 나서 점점 생각이 든다.
누가 되었든 살아 있을 때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 많이 표현하자는 다짐을 했다.
주말, 하루 종일 가족의 식사를 챙기며 바쁜 날, 그렇게 바쁘고 힘들 때 걸려와 틱틱거리고 받았던 할머니의 전화가 몹시 그리운 날이다. 이제 다시 걸려오면 아무리 바빠도 반갑게 받을 수 있는데 말이다.
힘들어할 때마다 늘 나를 다독여 주셨던 우리 할머니.
할머니가 몹시 보고 싶은 12월의 어느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