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3: 시선 a.

시선 a.

by 다온

20xx. 5. 달력을 통 안 봐서 모르겠다


화난다. 그리고 난감하다. 오늘 내가 입주하기로 했던 Space ODT 회사에서 뒤통수 맞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내집 마련하려고 모아둔 돈 다 털어서 이 프로젝트에 간신히 참여하게 된건데, 알고보니 그건 다 무용지물이었고 회사에서는 이미 공동체에 입주할 사람을 선정해 놓은거라 한다. 다시 말해 내 돈은 그저 남들이 우주에서 밟고 다닐 잔디 까는 돈에나 쓰였단거지. 정작 나는 그 땅 한 번 못 밟아보고.


도시지구_최종.png


어쩐지 뭔가 켕기긴 했어. 항로를 자동 설정하는 것도, 시스템 접근이 막혀있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인원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도. 아직 이 시대의 기술력으로는 그 많은 인원을 지금의 지구 꼴 나지 않도록 멀쩡히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게 턱없이 부족할 것 같기는 했다. 회사에서 대충 말한걸 되짚어 보면 예전에 있었던 미국이라는 나라 정도 크기의 행성인지 어딘가에 보낸다는데, 참여한 사람이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내가 참여한 회사에서만 몇천만명을 보낸다는데, 그럼 비슷한 프로젝트 파는 다른 회사들 통해 온 사람들은? 그 사람들도 있을 거 아냐. 이 사람들 다 모이면 지금 지구 꼴 나는거 아닌가? 다들 바글바글해가지고, 지구에서의 습관 못 버린 채 또 제멋대로 낭비하고 파괴하다가 결국 또 다른 행성 찾아 도피하겠지.


그래, 이상하더라니. 돈과 자원에 눈이 멀어버린 탐욕스러운 돼지들의 속내를 어떻게 알았냐면, 나는 자는 동안 어제 아디오스에서 어떤 네임드 유저가 라이브 방송을 하다 불어버렸다고 한다. 원래 이 사람도 ODT에 가기로 되어있었는데, 지구에서 유명세를 너무 얻어버린 나머지 자신은 지구에 남은 사람들을 등에 업고 세력을 넓히려 했는지, 회사에서 온 기밀 문서와 편지 등을 모두 공개하면서 이들의 속임수를 까발렸다. 이 사람은 겁도 없는지 기밀 문서까지 공개했는데, 그 안에는 속속들이 그들의 추악하고 치밀한 계략이 들어있었다. 몇 명만 선정되었으며, 귀하는 왜 우리 공동체에 필요한 인재인지, 또 이 곳에서의 생활은 얼마나 향락적이고 행복할 것인지 등, 감언이설로 도배를 해놨더랬다. 이 사람의 방송 녹화본을 일어나서 다시 봤는데,

“여러분은 모두 바보된거에요. 이 사람들이 여러분을 등쳐먹고 있었다구요. 저는 이 사람들이 너무 역겨워서, 지구에 남아있기로 했습니다. 돈으로 타인의 일생을 사고 팔고, 이게 할 짓인가요? 자원이 충분할수록 책임감을 가지고 나서야 하는데, 정말 실망스럽습니다. 지구가 이렇게 된 마당에 믿고 연대할 건 사람들 뿐인데, 이 사람들은 오히려 갈등과 붕괴를 조장하고 있네요. 저는 저를 믿고 응원해주시는 여러분들께 보답하고자 지구에 남아, 이 부조리를 꾸준히 고발할 예정입니다.”

뭐 방송을 요약하면 대충 이런 소리였다. 그 와중에 앞으로의 콘텐츠 홍보라니? 정말 대~단한 마케팅이 아닐 수 없다. 그래, 고발한 건 고마운데, 결국 너도 돈을 벌겠다는거잖아. 우주에 가서 할 짓 없이 썩는거보다 여기서 짧고 굵게 폭발하는게 낫다고 보는거잖아. 야, 너도 추악해. 알아?


그간 지구에서는 제대로 들여다본 적도 없는 아디오스를 보고 있자니 한숨과 조소만 나온다. 기상천외한 인간들이 생각보다 많구나. 이 기회에 유명해져 보겠다고 무모한 짓을 벌이는 사람들, 감성팔이하는 사람들, 아까처럼 선동하는 애들. 내가 본 영상 중에 진짜 미친 놈은, 접근금지구역 중에서도 가장 위험하기로 악명 높은 곳에 가서 춤추다 오는 사람도 있었다. 누가 나한테 설명 좀 해줘, 이 사람들 왜 이러는지. 그리고, 지금 의식주 해결도 급해죽겠는데 프리미엄 공기청정기 리뷰라니? 온갖 비싸고 쓸모없는 공기청정기는 모두 모아 후기를 알려주고 있었다. 이 청정기는 디자인이 어떻고, 어떤 공기 청정기는 수년전에 맑았던 어느 휴양지의 공기를 재현했으며, 또 거기에 맞춰 실내를 바닷가로 꾸며놓고 가상의 바캉스를 즐기는 모습까지… 누구는 유독한 공기때문에 죽어가는데 누구는 한 달 식비가 넘는 공기청정기로 “휴양지 공기”나 즐기는 꼴이라니. 이 엉망인 세상 속에서도 이런 게 돈이 된다는게 경이로울 따름이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다, 돈 버는 방법은 무궁무진하고 유명해지는 방법은 기상천외하다. 나처럼 조용하고 묵묵하게 소처럼 일하는 사람은 이렇다 할 별 소득 없이 잊혀질 뿐이다. 씁쓸하네. 내가 훨씬 똑똑한 말도 할 수 있고, 더 멀쩡한 사람일텐데.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의 진가가 아니라 그냥 내가 얼마나 웃을 수 있는지, 얼마나 뇌리에 더 박힐 수 있는지, 오락성과 자극성이 전부가 되어버렸다.


이게 다 사람을 못 만나서 그런거다. 내 진가를 알아봐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다 외로움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누구 한 명이라도 마음 터놓고, 얼굴 터놓고 만나고 싶다. ODT에도 못 가게 된 마당에 나는 결국 자동 설정된 항로를 따라 우주를 떠돌다가 늙어 죽겠지. 내가 이러려고 지구를 떠난게 아닌데, 이러려고 한게 아닌데.


내 미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거지, 어떻게 사람을 만날 방법 없을까. 이 넓은 곳에 버려져도, 너 혼자가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는, 그런 기회 없을까. 내가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만남을 조성하면 되지 않을까? 시스템 접근도 해킹해보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음, 무모한 생각이긴 한데 아마 버려진 우주 정거장이나 이런 데를 집결지로 마련해서 만나면 되지 않을까. 예전에 들은 바로는 버려진 우주 정거장이나 쉼터? 등이 꽤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근데 산소는 어떻게 하지? 우주선에 우주복 없는 것 같은데. 하, 미치겠네. 내가 가진 전부는 결국 이 우주선 하나 뿐이 되는 거잖아. 그리고 만약에 내가 접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그런걸 만들었다고 쳐. 이걸 회사 몰래 어떻게 배포하며 사람은 어떻게 모으지? 결국 내가 다 주도해야 하는거잖아.

아, 이런거 싫은데. 나서고 일 벌리고 이런거 내 성격 아닌데. 뭐 어쩌겠어, 목 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거지. 근데 우물만 파다 죽는건 아닐까, 아님 우물 다 파고 헛디뎌서 빠져 죽는건 아닐까. 별 잡생각이 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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