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d.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것처럼 느껴졌다가도, 그렇지 않은 것도 같다. 이런 상황에선 시간을 따지는 게 무의미할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과거와 같지 않다는 것 뿐. 대체 이런 환경에서 누가 미래를 꿈꾸겠나. 집 안이 곧 세계의 모든 것이 되어버렸는데 세상이란게 다 뭐냐. 자유롭게 대화하라며 준 게 기껏해야 이 따위 허접한 기계라니. 그나마 쓸모있는 건 뉴스 정도 뿐, 이게 진짜 만남의 대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건지.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그런 것들이 있어야 사회가 돌아갈테지.
뉴스에선 매번 복구에 대해 힘쓴다는 말에서 그치고 만다. 안간힘 써봐라 그게 될 일인가. 길고 짧은 거 대봐야 아는 거-물론 그게 틀린 거는 아니지만-핏대 세우며 말해봐야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뭘 어쩌란 말이냐. 덮어놓고 믿어준다고 모두가 해낼 수 있는 호락호락한 세상이면 얼마나 좋았겠냐. 지금 보니 엊그제 본 그놈들의 만찬 영상이 올라왔다. 기가 막히는 군, 배부른 놈들은 끊임없이 배부르다… 이 소리지. 배급받는..배급이 맞는 말인가 배달이라고 해야할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그렇게 사람 손이 하나도 닿지 않은 것 같은 음식으로만 겨우 끼니를 때우는 인간들도 버젓이 있는 것을… 분명히 낙타바늘구멍보다 좁다고 했는데, 저걸 보면 막상 현실은 그렇게 자애롭지도 않다… 이건가.
오, 이건 뭐냐. 저번에 올린 일기가 반응이 꽤 있군. 신기한 걸… 으흠… 어떤 놈들이 반응을 해왔는지 친히 확인해주도록 하지. 뭐지 이 놈들 봐라. “호위호식 말고 호의호식…”, “화가 잔뜩 났네. 잠이나 자라", “부러우면 너도 해먹든지" 이런… 지워버려야겠다. 일기를 지워야겠어. 젠장할. 이따위 말이나 들으려고 귀한 일기를 올려둔 게 아니야! 망할… 이건 또 뭐야. 개인 메시지? 말 같지도 않은 걸 뭐 이렇게 잔뜩 써놨어! 이놈도 저놈도 살만한 놈들 뿐인가보지. 시간이 남아도는 한심한 놈들 같으니라고.
쳇 이 와중에 웃기다는 부류도 있군. “X신 같은데 힘내라", “화도 콘텐츠로 쳐주냐?”, “나도 심심한데 네 넋두리나 보게 또 써서 올려봐" 뭐 내 속이라도 긁어서 재미 좀 보려나 본데, 쉽게 당해줄쏘냐. 하지만 실은 나도 별 거 없는 게 현실이다. 이미 나조차도 벌써 어처구니 없는 척하면서 한 자, 한 자 읽으면서 반응하고 있지 않은가. 흐음… 그렇다면 몇 자 올려두고 어떻게들 나오나 한 번 보자. 정신이 똑바로 박힌 놈들이라면 상식에 맞는 답들을 하겠지.
「폐허가 된 지구에 집이 곧 세상인 현실. 어찌보면 여기서 이렇게 시비를 거는 놈들도 나와 매한가지로 답답한 놈들인 거겠지. 어떻게 보면 이 사람들 장단에 맞춰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하지만 아직도 진실로 화가 나는 일들이 수두룩하다. 배부르고 등따숩게 사는 놈들, 이 상황에 대해서 몇 년간 아무런 발전도 이뤄내지 못한 나랏놈들. 이걸 다 모른 체 하고 마치 잘 살고 있는 듯 모르쇠를 일관하는 다수의 인간들. 소수만이 기를 쓰고 살아내려는 이 때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 다는 것 자체가 죄다. 지금의 지구가 살 수 없는 상황이고, 어떤 움직임도 쉬이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여 두 손 두발 놓고 있는 게 정당화 되지는 않는다. 우리 시민들은 알 권리가 있다.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말 지구에 가능성은 없는 것인지, 대안을 찾으러 우주로 나간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건지 등. 아무런 말도 없이 adios를 보급해주고는 사실 우리를 가로 막고 있는 건 아닌지 따져봐야한다. 이것을 소통이나 사회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건지 곱씹어봐야한다. 이제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대답을 들어야 한다. 내가 괜시리 화가 나있다거나, 있어보이는 척 하는 말이나 늘어놓는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되찾고 싶다면, 응당 해야할 일을 해야한다. Adios에 갇혀 안주할 것이 아니라 다시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