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c.
또 꿈을 꿨다. 뜨거운 태양이 비치는 하늘 아래에서 나는 한 사람이 겨우 앉아 있을 정도로 작은 나무 배 위에서 위태롭게 버티면서 수평선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를 표류하고 있었다. 파도는 거세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물살은 어색할 정도로 잔잔하고 새 울음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물 색깔은 투명하고 푸르렀지만 아름답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그 깊이를 알 수 있는 짙은 느낌이 섬뜩함만을 안겨줄 뿐이었다. 그토록 원하던 바깥 공기를 마음대로 마시고 돈을 주고도 쬘 수 없었던 태양빛을 만끽하고 있었지만 기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공기청정기 하나 없이 창문을 굳게 잠가둔 방 속에 가둬진 느낌이었다. 답답함을 이길 수 없어서 심장 부근을 문지르던 도중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괴물 같은 파도 아래에 무참히 가라앉아 버리고 말았다. 거대한 파도 앞에서 한없이 약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며칠 째 이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에 안 좋은 기억이 있었다거나 내 몸 상태가 안 좋다면 이런 이상한 꿈을 꾸는 것을 이해해보겠지만, 이 둘 중 그 어떤 것에도 내가 해당하는 것은 없다. 밖으로 마음껏 나가고 실제 인간과 살을 맞댈 수 있던 어린 시절의 모든 순간이 지금의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했고, 원격 진료와 건강검진으로 확인한 내 몸 상태는 아주 양호하다고 나타난다. 대체 뭐가 문제인 것일까…나에게는 안 좋은 고민을 한 번 시작하면 그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나쁜 습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하는 순간 탄력성을 상실하고 늘어져 버린 용수철처럼 일어나지를 못한다. 답답한 마음에 봤던 드라마의 전 시즌을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보고, 평소보다 운동도 강도를 높여서 하고, 보겠다고 메모 해 놓았던 영화도 모두 다 보았다. 주의 깊게 시청하지는 못했다. 말 그대로 켜놓고 화면을 ‘보기’만 했다. 화면에 등장하는 살아있는 듯한 생생한 색깔들과 진짜인지 합성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해 보이는 자연의 풍경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물론 그 많은 영화들의 모든 장면을 정말로 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당연히 내 기억을 사로잡는 장면들도 있었다. 바로 손을 잡는 장면들 그리고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는 장면들이었다. 조금 놀랐던 점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도 그런 장면들은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디를 보고 말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눈빛에 초점이 없는 경우도 있었고, 눈을 마주치고 있다고 해도 눈빛에서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있지 않는 중이라는 것이 읽히는 경우도 있었고, 어떤 경우에는 아예 자신들의 휴대전화에 골몰 되어 있을 때도 있었다. 비록 예의가 없는 모습들이지만 나는 그런 모습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할 수 없었다. 이런 것이 나뿐만일까? 인간 중 그 누가 자신 있게 매순간 내 눈 앞에 앉아있는 상대방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충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실제로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손을 맞댈 수 있었던 시절을 되돌려보니, 저렇게 상대에게 집중하지 않는 모습은 현실에서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작 할 수 있을 때는 눈을 맞추지 않고 손을 맞대지 않다가 그것이 불가능 해지니 그제서야 대화와 눈맞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늘 그렇듯, 인간은 또 한 발 늦어서 후회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 또한 대체재가 될 수 없는 그럴싸한 대체재를 붙잡고 그저 버티고 있을 뿐인 것이다. 이렇게 글로 나의 생각을 정리 하다 보니 비로소 찾은 것 같다, 나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꿈의 이유를.
하지만 내일 아침 눈을 뜨면 난 다시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을 것이다. 애써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들로 나를 둘러싸고 애써 내가 행복하고 나는 대다수와는 달리 현재 상황에서도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거짓을 남들에게 납득시키려고 몸부림칠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날 보고 거짓말쟁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상관 없다. 그리고 내가 비참하다는 진실은 나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 비참한 것보다 더 비참한 것은 남들에게 나의 비참함을 들키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