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 시선 b.

시선 b.

by 다온


20XX.04.15.


여전히 나는 우주에 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설명하려면, Space ODT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


Space ODT: 우주로 나갈 사람을 뽑는다, 형편이 된다면 우주 여행자가 될 준비를 해라.


우주로 나를 보내주겠다는 회사가 있었다. 왜 나냐고 물으니 가장 적합해 보여서, 귀하께서 지니신 기술적 역량이 돋보여서요, 저희 프로젝트의 목표에 부합합니다. 실험실에서 보냈던 밤과 교환한 학위가 이런 식으로 쓰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래서 우주로 가게 되었다. 정말 좋은 제안이라며, 그들은 우주여행 비용 전액을 사측에서 부담한다고 하였다. 모쪼록 귀하게 모시는 것이니, 참가를 긍정적으로 검토해달라, 실상 참가하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과부하에 빠져 있던 나는 그게 기회라고 생각했다.


죽기가 무서워 살아가는데, 우주로 나가면 죽기가 무섭지만 죽지는 않고, 그렇지만 지구에 남아 있는 것보다 죽을 확률은 높아지지만, 동시에 누군가를 만날 기회도 생기는 엉뚱한 확률 게임이 시작되었다. Adios에서 잘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저걸로 연애도 하고, 공부도 하고, 동아리 생활도 하는 사람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면서, 우주에 누군가를 내팽개칠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주에 던져지면, 그 시간은 최소한 우주라는 공허 때문에 멈춰지니, Adios 같은 건 필요 없는 여행이겠지. 그래서 나는 지구에 잔류하지 않고, 우주 미아가 되기를 자처했다.

애처로운 여행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옛날에는,


지구는 푸른 행성이었다. 우주 정거장에서 우주인들이 보면 푸른 행성이었다.


그리고 지구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았다.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만, 그들 앞에서만 아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기 때문에 사랑했던 지구. 문득 고등학생 때 개인 과제로 우주에 관한 소재 중 어떤 주제로든 발표를 해야 했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 발표 제목이 아마 우리는 별에서 왔다였었나? 어린 내가 전달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우리는 모두 별에서 온 원소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별에서 온 인간 얘기가 왜 떠올랐냐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기 때문에 사랑했던 지구, 사랑했던 사람들의 고향인 별들을 사랑하는 나. 하지만 사랑하던 지구는 아파했다. 지구가 아파요, 책 제목에는 많이 있던데 정작 그 책을 만들던 어른들은 다급한 위기의식은 느끼지 못했나 보다.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라는 질문은 수천 번 반복되어 이렇게의 렇 자만 들어도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 되었다.


과부하라고 했다. [1] 지구가 푸른 빛을 잃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과부하인 상황이고 이것은 우리 마음의 과부하와도 연결되니, 우리 마음을 우리가 보살피자. 과부하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먼저 전자 기기와 다양한 매체에서 귀와 눈을 떼야 한다고 말했다. 거름망 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세계의 사건 사고들, 저기선 누가 죽었으며 여기선 엄마가 아이를 죽였고 저쪽 바다에는 허리케인이 한꺼번에 다섯 개 만들어졌으며 이쪽에선 전염병 바이러스가 유출되어 수천 명이 감염되었다는 것. 그 모든 것들은 불행을, 전 세계 치의 불행을 너무 쉽게 한 사람의 어깨에 얹었다. 너무 쉽게 얹힌 불행은 그 사람을 괴롭게 했다.

전자 기기에서 손을 떼라고 했는데, 정작 사랑하는 사람들은 Adios 너머에 있었다. 위로하고 위로받으려면 나는 Adios에 접속해야 했다. 그곳에서 확인한 사람들은 잘살고 있었고, 못 살고 있었고, 아파하고 있었고, 나보다 더, 나보다 덜, 어떤 상태들이었다.


나보다 더 행복한,

나보다 더 불행한,

나보다 더?

나보다!

다보다

다 보인다!

다 보이더라.


너무 다 보였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너무 많은 것들이 보였다. 알고 싶어 했지만 정작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며 맛있는 음식 앞에서 듣고 싶었던 것부터, 취중에만 언젠가 한 번 듣게 될, 알고 싶지 않은 것까지 내 귀에 들어와 이해되지 못하고 쌓였다.

사람들은 이런 상태를 과부하라고 불렀다. 그 많은 것들에 압도당하는 사람들, 압도당해 아파서 깔려 죽을까 무서워 엉엉 울며 밤을 보내는 사람들, 화장실에서밖에 울지 못하는 사람들.


그래서 그것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한대? Adios에서 끊길 수 없었다. 사람의 얼굴을 직접 보고 대화하지 못하는 잿빛 지구에서 내게 남은 사랑하는 사람들은 Adios를 통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Adios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1차 분서갱유 이후, 어쩐 일인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조차 무거운 짐이 되기 시작했다.

아마 유리잔에 물을 따르면, 가득 차 넘치기 직전 몽글몽글 표면장력이 생기듯이. 그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식은 표면장력으로 쌓이던 양의 물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흩어지기 전에, 그 사랑마저 폭 터져 쏟아지기 전에 나는 Adios 계정을 지우고 싶었다. 유리잔이 넘쳐 물이 흐르기 전에 유리잔을 버리자.

별로 좋은 해결은 아니었지만, 이것보다 나은 방법이 있었나?



[1] <사실은, 많이 지쳐 있습니다>, 로라 판 더누트 립스키, 더퀘스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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