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 시선 a.

시선 a.

by 다온

20XX. 04. 01.


일기가 뜸했다. 한 달 동안 우울감과 무기력함에 휩싸여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벌써 4월이 된 것을 보고 평생을 이렇게 살 순 없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사실 지구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지구 위에 존재하던 사회가 와해되었고, 즉 사회에서 사용하던 단위와 체계에서도 벗어났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날짜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막말로, 나는 아침을 ‘저녁’이라고 부를 수 있고 점심에 먹는 밥을 ‘아침’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한 달이 30일이든 열흘이든 365일이든 알게 뭐람? 이 작은 우주선에 나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날짜 개념을 계속 쓰는 것은, 최소한의 사회성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사회성이란 무엇인가, 사전에 따르면 ‘사회생활을 하려 하는 인간의 근본 성질’이라는데, 지구에서의 나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임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에게 사회생활은 내재된 본질이라기보다는 생존에 가까웠기에. 혼자 독고다이하면 참 좋겠지만, 이 세상에서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다 사회 속의 구성원이었기 때문에 도태되지 않으려면, 잊혀지지 않으려면, 일을 해서 돈을 벌려면 나도 억지웃음이라도 띠고 그 속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아니, 그런줄 알았다. 그때는 억지웃음을 짓느라 얼굴 근육이 참 아팠는데. 이제는 그 통증마저 그립네. 우주에 와서 타인과 완벽하게 격리되니까 알겠더라. 내가 참으로 오만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사회라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이 내가 opt-in/opt-out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 사회의 체계와 사람들 간의 교류가 나를 꽤나 든든하게 지탱해주고 있었던거다. 이 점을 더이상의 사회성이 결여된 환경에서야 깨달은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면서도 애석할 따름이다. 앞으로 돌아갈 수 없기에.


지금 살고 있는 이 공간도 (우주선인지 비행 물체인지 뭐라 지칭해야 할지 난감하다) 집이긴 하지만, 떠돌이가 된 기분이 드는건 왜일까. 허공에 둥둥 떠다녀서 그런가. 마치 난민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아니, 난민이 맞지. 내 돈 주고 난민이 되길 자처한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상황이 아닐 수가 없다. 난 지구를 떠나기를 주저없이 결정했고, 한평생 열심히 일해 모은 돈을 새로운 보금자리에 쏟아부었다. 뼈빠지게 일해서 얻은 결과라는게 지구 탈출이라는게 기쁘기도 슬프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하더라.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탈출이 목적인 이민이었기에 더욱 생경하고 묘한 경험이었다.


우주공허_최종.png


당장 일기를 쓰는 와중에도 창문 너머로는 광활하고 허한 우주가 보인다. 까만 바탕에 하얀 점들. 첫 일주일은 색다른 시야였는데, 지금은 저 무한한 검정색 배경에 내가 잡아먹히는건 아닌가 하는 다소 괴기한 생각도 한다.


어제까지 얼빠진 사람마냥 침대에 몇 시간을 눈 뜨고 누워있었다. 때로는 생각을 하면서, 또 하지 않으면서. 그러다 갑자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죽을건가? 평생 이렇게 살 순 없어.


전재산 다 쏟아부어 새로운 희망을 안고 떠나왔는데, 무기력함에 질식사할 순 없다. 한번도 내 사인이 고독사일거라고는 상상해 본적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뭐라도 하자. 내가 지금 느끼는 공허함, 그리고 나를 지탱하고 있던 무형의 유대감은 분명 나만 느끼는게 아닐거다. 이에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대화는 화면 너머가 아닌, 대면이어야 한다. 누워있는 동안 Adios를 꽤나 탐색했다. 그리고 느낀건, 비대면은 뭔가 쎄하다는거다. 무어라 형용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올리는 게시물에 대한 찝찝한 불신이 계속 남았고, 아카이빙이 된다는 Adios의 특성상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순간들만을 선별하여 올리는 듯 했다. 이대로는 진솔한 대화와 공감을 해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만나야만 해. 어떻게 해서든.


ODT 계약 내용이 서로 만나지 말 것이었던 것 같은데. 셀 밖을 나가는 무모한 시도를 하지 말 것이었나? 하튼, 서로 간 접촉을 금했던걸로 기억한다. 근데, 왜지? 갑자기 궁금하네. 왜 제지할까? 우리가 서로 눈 마주치면 돌 되는 메두사도 아니고, 접촉하면 병에 걸리는 거도 아닌데.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방법을 찾아서, 끝없는 우울함을 타파하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었음을 비로소 다시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이 답 없는 우주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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