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c.
오늘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시작하고 또 마무리했다. 어김 없이 눈을 뜨자 마자 간밤 동안 수많은 알람이 밀려 있을 Adios Malice 에 로그인했다. 정말로 연락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쓰는 부계정에 제일 먼저 들어가서 밀린 답장과 답장하기 애매한 말들에 적당한 반응들을 남겼다. 그런 후에는 나의 밥벌이인 주계정에 들어가서 밤 사이에 쌓인 약 400만 개의 반응 수치를 확인하고 약 20만 개의 댓글을 의미 없이 스크롤 해보는, 별 다르지 않은 루틴을 끝낸 후 침대에서 일어났다. 카메라를 들고는 화장실로 직행해서 지난 주에 KVMH 에서 제공 받은 클렌징 제품을 사용하며 세안하는 영상을 찍고 업로드한다. 계약금이 입금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잠시 그 행복감을 즐긴다. 그런데 요즘 이 행복감도 정말 잠시이다. 그 후에는 여름의 장마처럼 그칠 줄을 모르고 밀려오는 공허함이다. 물론 이 공허함도 이제는 익숙하다. 예전처럼 이 공허함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애써 고민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이 공허함 자체를 이제 신경 쓰려 하지도 않으려고 한다. 황량한 지구에 여전히 남아있는 내가 고안해낸 일종의 생존 전략이랄까.
예전에 어디에서 ‘부러움의 성립조건’ 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글을 읽을 당시에는 그 내용을 진지하게 따져본 적이 없었는데 요즘 들어서 그 글을 곱씹게 되며 내가 그 조건들에 부합하는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그 글에서는 총 4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1. 부러워하는 사람과 부러움의 대상인 사람 간에 부러움의 이유가 되는 한 가지 특성을 빼놓고는 나머지 조건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뭐 이건 부러워하는 사람의 상황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경제 수준과 같은 화려한 면을 제외하면 나도 인간이 도저히 살 수 없을 지경에 다다른 야외로 함부로 나갈 수 없다는 것, 남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면대면으로 만날 수 없는 등 지구에 남아있는 보통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2. 두번째는 부러움의 이유가 되는 특징이 부러워하는 사람과 상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상관이 있다. 이렇게 삭막하고 사람 하나 제대로 만날 수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 그나마 이런 지경이 되기 전의, 살 만한 지구의 상태와 그나마 유사하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이 몇 가지 없기 때문에 그 상실감을 채우기 위해서 더 물질과 화려함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3. 부러워하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으로는 자신이 부러워하고 갖고 싶어하는 특성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4. 마지막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그 부러움의 이유가 되는 속성을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불공평한 방식으로 얻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정 부분은 충족하고 일정 부분은 충족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비록 내가 일찍부터 사업을 시작했고 세상 흐름 변화에 남들보다 두 발은 앞서서 준비했던 것은 맞지만 그에 대한 지원과 자원은 나의 부모님께서 제공해주신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이제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조건 중 첫째 조건을 채우지 못하게 될 예정이다. 난 이미 우주 피난처 스페이스 오블리비언에 진작에 거처를 마련해둔 상태이기 때문이다. 내가 마련했다기보다는 나의 할머님께서 하셨다고 말하는 게 제일 정확하다. 지금과 같은 상태를 40년 전부터 이미 예상하고 계셨던 할머니께서는 가족들이 지구를 떠나 머무를 스페이스 오블리비언 프로젝트를 주도하셨던 장본인이시다.
내가 남아있는 이유는 그저 여전히 지구에서 못 살 정도는 아니고 아직 돈을 버는 재미가 있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써놓고 보니 굉장히 현실과 동떨어진, 혹자는 불공평하다고 볼멘소리를 낼 이야기이긴 하다. 그런데 어쩌겠어?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 곳이다. 그저 그 사실을 얼마나 빨리 깨닫고 얼마나 지혜롭게 보내는지가 관건인 것이다.이 일기만 쓰고 잠을 청할까 했는데 저 꼴보기 싫은 애가 라이브 스트림을 시작했다고 알람이 온다. 나도 특별히 할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급히 라이브 스트림을 시작하기 위해 이만 일기를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