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b.
옛날에 친구는 여행을 가면 일기를 꼭 쓰라고 했다. 사진도 남지만 그날의 기분을 담은 네 글도 남는다고. 지금 나는 우주다. 지구를 떠나 온 불쌍한 지구인 하나. 우주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어쩌다 지구에서 여기까지 왔는지 기록하겠다.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 지 90일이 되었다. 50일쯤에는 전화 상담을 받았고, 60일쯤에는 객기를 부려 뛰쳐나가려 했지만 문을 열자마자 닫아버렸고, 90일이 되어서는 죽고 싶었는데 칼이 무서웠다. 칼이 무서워서 여전히 살았다. 죽음이 무서워서 살았다. 그건 바람직한 삶의 형태가 아닐 텐데, 90일이 되어 살기 싫지만 죽기도 무서우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모든 책에서 그렇게 말했다. 외출할 수 없게 된 날 이후로,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모든 책은 그런 얘기를 했다. 그래서 무서웠다. 그 책들은 모두 이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영영 서로 직접 만날 수 없으니, 너희는 끝이야. 책이 생전 살아 있는 괴물로 처음 느껴졌다. 그래서 90일이 되던 날, 사회적 동물이라고 이야기한 모든 책을 찢어 태워버렸다. 찢다가 쓸데없이 손가락을 베어, 도리어 눈물이 나던 걸 또 책 탓을 하며 애꿎은 책들도 몇 권 태워버렸다.
그 태운 책 사진을 찍어 Adios에 올렸다. 생전 처음 받아 본 개수의 관심을 받았다. 무려 “챌린지”라는 이름을 붙여 비슷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한둘 있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몇 달 정도는, 지구가 뿌연 세상이 되고 난 이후로 가장 조금 절망적이었던 날들이었다.
그러나 딱 그만큼 견딜 수 있는 정도였다. 갑자기 나는 Adios에 올렸던 모든 사진을 삭제하고 계정을 삭제했다. 와중에 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말도 없이 사라진다는 게 스릴 넘쳤다가, 계정이 삭제되었다는 안내 문구를 보자마자 엉엉 울었다. 또다시 언제 지구가 외출이 자연스러울 때가 찾아올지 알 수 없었다. 끝이 없을 것이라는 게 뉴스에서 웃으며 해학처럼 지나가던 말이었던 작년 초가 너무 그리웠다. 이제 끝은 없겠다, 끝은 없어요, 앵커가 끝이 없다고 말하는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게 행운이었지만 아마 폭동이 너무 많이 일어났을 테니 뉴스에서는 차마 그런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위선자. 그렇게 아무 표정도 없이 사실만 읽는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은가?
외로움은 사람을 미치게 했다.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을 원망하고 미워하게 했다. 그리고 그런 근거 없는 증오가 부끄럽지 않게 했다. 이런 내가 무서웠다. 무서운 나는 화장실에서만 울었다.
화장실에서만 우는 건 지구가 이렇게 되고 50일쯤부터 생긴 습관인데, 그렇게 화장실에서 울어야 큰 거울에 우는 얼굴이 비쳤기 때문에 덜 괴로울 수 있었다. 그래서 화장실에만 들어가면 어느 날엔가 울음이 났고 울었고 화장실에서 올라오는 수돗물의 비린내는 자꾸 눈물의 짠 내와 구분할 수 없게 어지러워졌다.
그런 치사한 태도로 삶을 일관했다. 그렇지만 이 세상은 치사한 태도가 아니면 이겨낼 수 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참고 자료] 이은환 (2020). 코로나19 세대, 정신건강 안녕한가!. 이슈&진단, 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