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a.
우주방황 5주차, 있지도 않던 우주공포증이 생길 것 같다.
생을 마감하는 방법은 놀라우리만치 무궁무진하다. 옛날에 어떤 사람은 손세정제 바르고 담배불 켜다가 전신 화상으로 죽었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술 먹고 발 헛디뎌서 허무하게 실족사 한 경우도 있다. 그리고 난, 아마 외로움에 질식해서 죽지 않을까 싶다.
난 본디 인간을 매우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몇 년 전, 지구가 멀쩡하고 사람들이 나돌아다닐 수 있었던 시절에, 난 직장에도, 집에도, 하물며 길거리에도 사람이 있는게 너무나도 싫었다. 당장 이 일기장에서 몇 장만 앞으로 넘기면, 인간은 날 피곤하게 만들 뿐이야. 제발 말 좀 걸지마. 왜 이렇게 나불대? 너랑 대화하고 싶지 않아. 퇴근하면 같이 저녁먹자고 하지 마세요, 상대하기 싫으니까. 이런 말들이 적혀있으니, 뭐, 얼마나 싫었는지는 더 말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예전에 티비에서 하는 고전영화 ‘캐스트 어웨이’를 시청한 적이 있다. ‘나라면 행복해서 미쳐 날뛸텐데. 혼자 남겨지는 거 얼마나 좋아, 다른 역겨운 인간들 마주치지 않아도 되고.’라는 생각으로 봤었더랬다. 그때는 외롭고 무서워서 우는 주인공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지금은 우주선 창 너머로 보이는 무한한 검정색을 보며 눈물을 흘릴 뿐이다.
지구를 떠날 때만 해도 나는 평생 우주선에서 혼자 잘 살거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망쳐놓은 이 지구가 너무 지겨웠다. 아니, 자기들이 신명나게 망쳐놓고 이제 와서 “지구는 더 이상 살 수 없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이젠 우주로 가야 할 때입니다.” 이 xx을 한다고? ‘왜 니가 싼 똥을 내가 치워야 해.’ 이 생각을 하며, 우주로 가는 것은 인간과 그들의 산물에서 벗어나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사실, 첫 일주일은 꽤 좋았다. 사람들과 전혀 다른 공간에 있다는 점, 더 이상 소통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이 광활한 우주에서 오롯이 나의 시간의 가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일주일 동안 굉장히 행복했다.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는 기대감, 외부적인 스트레스로부터의 해방감. 기대에 부풀어 나는 내 adios 계정을 삭제했다. 별로 올린 것도 없었지만, adios 계정을 애초에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사람을 싫어했으면서.
아무래도 나의 일부는 사회에서, 집단에서 도태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너네가 싫지만, 멀리 하면 나만 손해니까 같이 있어주는 거야 같은 심보랄까. 최소한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정확히 말하면 어떠한 이해관계를 염두에 두고) 계정을 만들고 주변 사람들을 팔로우했다. 분명 우주선에 탑승하기 직전 그야말로 Adios 를 외치며 들뜬 마음으로 탈퇴 버튼을 눌렀는데, 우주에 온 지 5주 만에 다시 깔게 되었다.
오랜만에 들어간 Adios 는 혼돈 그 자체였다. 이쯤 되면 Chaos로 이름 바꿔야 하는게 아닐까. 우주 간걸 자랑이라고 올린 사람들, 황폐한 지구에 남아 절망스러운 사람들, 그들 간의 끝없는 갈등, 그리고 틈새시장을 노리는 관종들까지. 혼람함에 머리가 어질어질하면서도, 이상하리만치 반가웠다.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났다. 그리고 눈물이 흐른지 5초만에 이런 내 자신이 거부감 들었다.
왜 이래, 너답지 않게. 지겹다 지겨워 할 땐 언제고, 이 개판을 보고도 반갑다니.
생판 모르는 인간들의 포스팅 사이사이로 지인들 소식도 보였다. 그래, 다들 잘 사는구나. 이 거지같은 삶을 살아내는구나. 묘하게 동질감이 들었다. 내 인생만 x같은건 아니라는, 다들 비슷한 감정과 고민과 우울함을 안고 산다는 안도감.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좀 더 친분을 쌓아두는건데. 멀어진지 오래여서 섣불리 연락은 하지 못하고, 아디오스 넘어로만 내적 인사를 건네는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