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여행을 위한 안내서를
위한 안내서

다온, 엮은이의 말

by 다온




우리 밥 한번 먹자, 라는 말이 서투른 시기이다. 우리 얼굴 한번 보자, 라는 말이 어려운 시기이다. 그런데 이 말들이 어려워진 지 벌써 7개월째라면 믿겠는가. 이미 2020년의 절반 동안, 우리는 서로 한번 만나자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워진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눈앞에 상대의 실제 얼굴을 둘 수 없다. 인터넷 선과 인터넷 신호가 전달하는 노이즈 낀 화면을 통해서 상대를 바라본다. 그 어느 때보다, 디지털 공간의 만남이 성큼 다가왔다. 그게 싫었던 사람들은 디지털 공간을 버리고 지하철을 탔겠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싫어도 디지털 공간에 발을 붙여야 하는 때가 7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이곳은 여느 공간에 비해 관계 맺음에 대해 높은 접근성을 가진다. 하지만, 디지털 세계는 관계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길 수 있는 간편함에 대한 반성이 부재한 공간이기도 하다. 디지털 공간에서의 관계는 어떻게 해서 등장했을까?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관계, 혹은 나의 표현으로는 ‘아날로그 관계’가 충족해주지 못하는 것을 채워주기 위해 생겨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실제로 디지털 공간에서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창구도 많으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많이 받지 않고, 또한 직접 상대와 얼굴을 직접 볼 필요 없이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즉, 디지털 공간에서는 관계를 형성하고 지속시키는 비용이 아날로그 관계에 비해서 절감된다.

그렇지만 이분법적 판단을 유보하고서라도, 정말 비용이 절감된다고만 단언할 수 있을까? 관계 형성과 지속에 드는 비용이 줄어든다는 것이 실은 진정성과 같은 다른 것을 담보로 한 결과물은 아닐까? 설령 그 비용이 경제적이라고 해도 과연 디지털 공간상의 관계는 ‘인간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타인들과의 대화는 내가 가졌던 의문과 고민들이 오직 나만의 것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했다. 따라서, 나는 그들과 내가 생각했던 쟁점들을 색다른 방법으로 전달하려 한다. 먼 훗날, 지구를 버릴 수 있게 된, 그리고 버리지 못하게 된 우리 후손들의 일기를 옮기는 방법으로 말이다.. 이는 소통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관계’를 탐구하는 이 프로젝트('관계 여행을 위한 안내서')에도 매우 부합하는 안내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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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는 지구가 극심한 환경오염, 자원 부족에 시달리는 시기에 쓰였다. 인간은 가장 기초적인 사회생활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지금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닮은 “Adios Malice”(이하 Adios)라는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다. 지구에 잔류한 인간들은, 서로 직접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Adios 내에서만 관계 맺기를 이어나간다.

누군가는 이 시스템에 효율적으로 적응하여 어마어마한 돈을 벌고, 다른 누군가는 환멸을 느껴 계정을 지우고 다시 만들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대면 접촉이 전면 차단된 사회를 살아가는 그들의 일기를 읽으며, 현재 우리가 유지하는 관계의 목적, 종류, 조건 등에 대해 개인적으로 처한 상황을 비추어 돌아볼 기회가 생기기를 바란다.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의 일기를 가져온 것은 독자들에게 이런 경험을 안겨주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사람들이 Adios에 적응하는 동안, 우주를 선택한 사람들은 우주로 떠난다. 지구를 대신할 새로운 행성을 찾자는 목표 하에, 그들은 우주의 미아가 되기를 자처한다. 그들의 고립에 대한 용기는 새 피난처를 찾을 수 있다는, 판도라가 남긴 희망 한 조각 혹은 인간관계에서 느낀 수많은 환멸에 의해 지탱된다.

당연시된(혹은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관계는 그것을 음미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나와 남의 인간성을 퇴색시킨다. 어떤 노랫말처럼 "관계만 있고 사람은 없게" 되는 것이다. 끝없는 공허에서, 미래의 그들은 어떤 관계를 추억하며 견뎌냈을까. 끝없는 공허에서, 우리는 다른 인간과 소통하고 싶어 할까. 이런 질문들은 당연시된 관계를 낯설게 만든다. 이런 우주 속 이질성을 따라간다면, 일기는 독자들에게 위험(?)에 빠진 관계 안의 인간다움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노력의 여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처해보지 않은,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닮아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인물들의 일기를 통해,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겼던 관계 맺기의 속성을 돌아보고, 그것이 안타까운 시기를 맞아 디지털 창구를 통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네 명의 일기를 따라가며, 그들을 한편으로는 응원하며 일기가 종료될 때 그들의 삶이 맞는 결말에 따라 후회 없는 이별을 준비해주신다면, 미래의 그들은 내심 기뻐할지도 모른다. 지구와 우주 모두에서 관계라는 얇고 튼튼한 실을 달고 다녔던 그들에게는 그 실의 마지막 끝 또한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별을 받아들일지, 이별을 선택할지,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일기와 어떤 이별을 고해야 할지 고민한다면, 아날로그 관계와 디지털 관계, 관계 자체의 속성을 아우르는 고민의 대단원이 되어줄 것이다.







이 모든 걸 다룰 생각을 하니 벅차오르면서 다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