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3: 시선 b.

시선 b.

by 다온

20XX.05.22.


제안받은 Space ODT에 참가를 결정하고, 나는 Adios 계정을 지운 것보다 더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지구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음에서 죽였다.


마음 화장창.png


그들을 죽여야만 내가 살 수 있는 관계라니 관계는 얼마나 덧이 없었나. 그렇지만 그들은 죽어야 했다. 우주로 떠나는 것이 확실해진, 과부하에서 탈출하려는 내게 그들이 준 사랑과 그들과 나눈 대화는 짐이 되었다. 푸른 지구가 시시때때로 그리워지게 만드는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 붙어 있었다. 그렇게 생겨난 옛 지구에 대한 그리움은 우주로 떠나는 내 발목을 붙잡았다.

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그들을 내 마음에서 죽였다. 그들의 웃는 얼굴을 모두 일그러진 얼굴로, 그들이 건넸던 다정한 호칭을 그저 아무개로 지웠다. 그렇게 해야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옛날에 대한 그리움이 사라지고, 우주로 떠날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희망만 남았다.


아 미래를 위해 죽여야만 하는 관계를 얼마나 후회하나.


내가 제일 먼저 죽였던 사람은, 더더욱 먼저 죽이지 않으면 정말 내가 죽을 것 같은 사람. 우리는 폐허가 되기 전 지구에서 우연으로 만나 필연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다. 지구가 폐허가 되어가던 때, 우리의 만남은 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낙천적이었고 나는 비관적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비관적이어서, 이미 비관적이었던 나보다는 낙천적이고 밝던 그를 더 세게 후려쳤다.

그는 자꾸 화장실에서 우는 일 말고는 아무 일도 못 하겠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Adios 기계를 들고,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함께 화장실에 들어가 그의 울음소리가 저쪽 화장실 그리고 내 화장실까지 와 벽에 부딪혀 울리는 소리를 묵묵히 듣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우리는 서로를 도와줄 수 없었다. 보통 세상이 망해가는 영화는, 세상이 폭발하기 전 사람들끼리 포옹을 하거나 키스를 하거나 슬픈 웃음을 보여주든가 하던데, 이 세상이 망한 방법은 바로 그것들을 할 수 없게 하는 그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더는 연락하지 않았다. Adios나 Adios 기계를 통해 다른 방식으로 목소리를 듣고, 얼굴을 볼 수 있었지만, 그렇게 서로 표정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것들을 통해서는 뺨을 만질 수 없었고 온기를 느낄 수 없었고 엉킨 머리카락을 잘라줄 수 없었다.
관계가 시들어가는데 그곳에 물을 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야 했지만 만들지 못한 물, 그 물이 없어서 관계는 시들었다.

그래서 우리의 관계는 열매 없이 그곳에서 끝나버렸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은 마음에 남아 나를 괴롭혔다. 얼굴을 보지 않고 생사와 소식을 파악하지 않는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 관계가 있다. 일방적인 관계, 원래대로의 쓸모를 잃은 관계는 그래서 마음 안에 쌓여 나를 힘들게 했다.

어차피 소용없는 관계에 오히려 가장 무거운 마음의 부분이 든다는 사실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를, 그와의 관계를 죽였다. 그러나 내 마음을 덜지 않고 관계만 도려낼 방법은 없어서, 가차 없이 무거운 마음의 선을 따라 통째로 도려냈다.

그건 모든 흔적을 지우는 일에서 시작해서, 모든 감정, 모든 문장, 모든 생각을 저편으로 밀어 두는 일로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흉이 난 마음을 손에 붙잡고 꺼이꺼이, 마지막으로 소리 내어 운 밤에 끝이 났다.


그렇게 나는 사람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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