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4: 시선 c.

시선 c.

by 다온

20XX.05.22.


오랜만에 부모님과 화상 통화를 하였다. 원래 같이 있을 때도 서로 많이 이야기하지 않고 떨어져 있어도 자주 연락하는 가족이 아니었던 지라 이번 통화는 거의 두 달만에 하는 통화였다. 보통은 오랜만에 하는 통화라고 해도 서로 할 말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통화가 3분을 넘기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오늘의 화상통화는 달랐다. 오랜만에 본 엄마의 얼굴이 옛날과는 다른 느낌이어서 그랬는지, 아버지가 평상시와 비교해서 유달리 말씀이 많으셔서 그랬는지, 나도 그에 못지 않게 말이 많이 나와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통화는 장장 3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오늘 통화의 주제는 부모님의 스페이스 오블리비언에서의 생활이었다. 부모님은 이제 스페이스 오블리비언 생활에 완전히 적응하셨다고는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내가 부모님과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보낸 시간은 길었기 때문에 부모님의 눈빛은 누구보다 잘 읽어냈다. 표면적인 생활 면에서는 불편하시거나 부족하신 게 없어 보였지만 눈빛은 알게 모르게 흔들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스페이스 오블리비언의 실내 시설이나 부모님의 의식주와 같은 것은 지구와 큰 차이 없을 것이다, 아니 심지어 새로 지어진 시설이라서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여전히 시설을 벗어나서 야외로 나갈 때에는 거대한 보호 장비를 착용해야 하고 그 마저도 마음껏 외출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다시는 지구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들이 부모님이 불안을 완전히 잠재울 수 없는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대화를 할 때 스페이스 오블리비언의 장점을 한참 나열하시고 할머니의 선구안을 극찬하시다가도 결국은 ‘그래도 전만은 못하지’ 라는 씁쓸함, 그 대상을 찾지 못한 원망스러움 그리고 약간의 불안함이 응축된 말씀을 하시면서 한숨으로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 하셨다.


사실 난 왜 부모님이 여전히 완전히 행복하시지 않은 지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장소만 지구가 아닐 뿐이지, 스페이스 오블리비언에서는 실내에서 만큼은 사람들끼리 어떠한 보호장비 등 없이 서로 살을 맞대거나 서로의 눈동자를 어떠한 전자기기를 거치지 않고도 또렷하게 마주칠 수 있다는 점등 지구보다 나은 점이 훨씬이나 많은데 말이다. 그렇지만 이 말을 하고 있는 나조차도 아직까지 지구를 떠나지 못 했다는 점, 나 또한 이곳을 떠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점이 여전히 두렵다는 점을 떠올리자 부모님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하였다. 나와는 다른 결의 불안함을, 불행함을 품고 계시고 있는 것이었다.




통화를 마친 후에는 일을 했다. 오늘 올릴 영상은 나의 진정한 일상이라고 하기는 힘든 나의 일상에 관한 것이었다. 영상에 담은 내용을 대략적으로 이러했다.


8시 30분에 울리는 알림을 듣고 순백색의 침구류로 덮인 침대에서 일어난다. 입고 있는 잠옷은 얼마전 착용 제의를 받은 브랜드의 신제품이다. 이 신제품을 살 수 있는 링크를 동영상과 함께 업로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 후에는 부엌으로 가서 물 한 잔을 마신 뒤 역시 사용 제의를 받은 커피 메이커로 커피를 내린다. (커피를 좋아하지도 않는 나로서 이런 장면을 찍는 것은 가끔 고역일 때가 있다) 커피가 내려지는 동안 화장실에 가서 새롭게 사용 제의를 받은 클렌징 제품으로 세안을 한다. 평소 영상을 찍지 않을 때는 내가 기존에 쓰던 제품을 쓰지만 영상을 찍을 때는 이렇게 사용 제의 받은 제품을 쓴다. 세안을 마친 후에는 파우더룸으로 향해서 조명을 밝게 키고 기초적인 화장을 한다. 오늘 촬영 때문에 3일 전 정도에 주치의로부터 피부과에서 사용하던 장비로 관리를 받았다. 허가를 받지 않고 이동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법이긴 하지만 해당 부서의 업무를 총괄하는 부서장 분이 이모와 얼마 전에 재혼하신 분이라서 특별히 허락해주셨다. 하지만 이러한 부탁도 너무 자주 하면 힘들다. 그래서 피부과 시술과 같이 나에게 정말 중요하고 꼭 필요한 일일테만 새이모부에게 부탁을 드린다.



기초 화장을 마친 후에는 좀 제대로 된 홈웨어로 갈아입는다. 말이 홈웨어지 웬만한 사람 외출복 값의 3배 정도는 된다. 평소에 매일 이런 홈웨어를 입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엄마를 닮아서 옷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편이다. 홈웨어로 갈아입은 후 다 내려진 커피를 마시러 부엌으로 다시 향한다. 커피를 한잔 따르고 냉장고에서 요거트를 꺼내서 커피와 요거트를 들고 홈오피스 방으로 향한다. 15분 정도 컴퓨터로 스페이스 오블리비언의 상황과 새로운 비즈니스 제안에 관한 메일들을 확인하고 필요한 답장을 보낸다. 업무를 마친 후에는 원격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기 위해 운동하는 방으로 향한다. 스크린을 키니 트레이너 분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신다. 아 참 운동을 위해 입은 레깅스와 탑 또한 착용 제의를 받은 것들이다. 착용 제의를 받은 것이긴 하지만 내가 돈을 주고 사라고 해도 샀을 만큼 꽤 괜찮은 제품들이다. 운동을 다 마치고는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라는 말과 함께 카메라를 끈다. 영상 파일을 노트북에 저장하고 편집자 분께 이메일을 보낸 후 영상 파일 전송했으니 4일 후에 업로드 부탁드린다는 말을 메시지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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