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4: 시선 b.

시선 b.

by 다온

20XX.05.23.


이제 어쩌다 우주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기록한 것 같다. 사실 대망의 출발은 올해 1월이었다. 첫 출발 후, 온갖 일이 있어서 3월까지는 일기를 쓸 기운도 없었다.


우주로 출발하는 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지구를 떠나고 2시간 뒤에야 알게 되었다.


간과하고 있던 게 많았다. 돌아보니, 사람과의 만남에 목이 말라, 말라버린 지구에 우울해져 나는 지구가 원래였다면 의심했을 수많은 것들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다. 투자자는 어디가 있고, 법인 등록은 되어 있으며, 사무실은 어디고, 보험은 어떤 보험이 보장되어 있으며, 등등. 그리고 저를 스카우트하신 그분은 어디서 나오신 분이며, 내가 가진 학위에 대한 지식을 평가할 만큼의 식견이 있으신 분인지, 저 우주에 사람을 내보내 새로운 정착지에 보내줄 수 있다면 그 정착지의 정확한 위치는 이미 무인으로 탐사가 완료된 것인지.

물론 위치와 지도와 항로, 방대한 양의 자료를 받았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건 누군가에게는 사기가 아니었다. 나같이 뒤통수를 맞아, 새로운 정착지 탐색에 쓰일 1인 우주선에 랜덤으로 실린 사람들에게는 사기였다. 그건 다 내게 상관없는 자료들이었다. 이미 우주선은 항로가 지정되어 있었다. 사기꾼 XX들 분명히 해커같이 이 문제를 해결할 만한 전문가는 초빙하지 않았겠지. 사기꾼 XX들!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사람에게 잔인할 수 있나. 지구가 망해가고 있는데, 당장 내일이면 누가 먼저 갈지 모르는 세상에서, 어떻게 이리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잔인할 수 있나. 그런데도 그런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나는 얼마나 안쓰럽나.

타인의 사랑이 사라지니 자기애가 강해져 이렇게 스스로 연민하나 보다.


지구가 망하기 전, 이렇게 우주에 고립된 사람들을 그린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자발적으로 고립을 선택한 건 아닌데. 나는 자발적으로 이 처지를 선택했다. 아니, 생각해보면 정착지로 향하는 며칠 간의 여정만 혼자 해내면 된다고 했을 때 의심을 해야 했는데, 사기꾼 XX들 때문에 나는 우스꽝스러운 고립을 알아서 선택한 꼴이 되었다. 내 이야기가 다시는 발견되지 않아, 후대에 각색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 일기를 쓰고 있는 나는, 사실은 누구보다 잊히기 싫은 사람 아닐까? 아이러니지만, 우주에 나온 뒤 지구의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뜸해졌다. 모두와 멀어지니 화장실에서 울던 기억조차 금세 희미해지고 있다. 참 웃겨, 이렇게 조금 떨어졌다고 이렇게 홀가분해도 되는 거야? 사람은 사람에게 얼마나 잔인한가, 심지어 스스로에게조차. 이렇게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을 만큼, 때로 사람은 냉정하다.




여전히 바깥 풍경은 한결같다. 달라진 것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자꾸 마음 안을 파헤치게 된다. 그리고 그 마음에 있는 것들은 모두 지구가 아프기 전 만들어졌던 과거의 파편들이다.

우주를 항상 동경했다. 맨 처음 일기에 썼던 것 같은데, 우주에 나가 지구의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동경했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를 순식간에 오가는 사람의 감정을 동경했다. 고립된 우주 이야기도 결국 광년의 거리를 무시하는 사랑, 증오, 그리움, 광기 덕분에 진행되었다. 사람은 사람에게 한없이 잔인했지만, 사람은 사람에게 한없이 빠르고 주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주저 없는 속도를 체감하게 하는 우주를 동경했다.

그러나 우주를 그렇게 동경할 수 있던 것은, 지구에 발을 붙이고 살 때의 이야기였나. 오히려 그 우주 속으로, 발붙일 곳 없이 떨어지니 마음이 멍하다. 그래서 그리 동경하던 우주 속이라고 스스로 달래다 보니 사기꾼들에 대한 생각은 작아졌다. 분노는 불같은 감정이라 꽤 빠르게 사그라들기도 한다는 것을 이렇게 이해한다.

지구가 이렇게 되기 전, 함께 봤던 영화에서 주인공은 이런 말을 했다. 우주 한가운데, 달랑 우주복 하나에 의지해서 둥둥 떠다니면서 뒤에 있는 이에게 이렇게 물었다.


저 아래에, 하늘을 보면서 네가 집에 돌아오길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어? [1]


그제야 나는 알았다. 그토록 동경하던 우주 안에 들어온 나는, 그 영화처럼 지구가 낭만적인 곳이 아닌데도, 나는 지구로 돌아가고 싶었다. 누군가가 생길지도 모르는 그 가능성이 존재하는 지구로 돌아가고 싶었다.

5년 전 겨울 추워서 덜덜 떨던 골목길에 갑자기 어묵을 집어 먹던 지구로 돌아가고 싶었다. 5년 전 여름, 더워서 얇게 걸친 옷을 입고 갑자기 바다에 달려갔던 지구로 돌아가고 싶었다. 5년 전 봄, 날리는 꽃가루에 코를 문지르며 갑자기 강변 공원에서 대낮 술을 했던 지구로 돌아가고 싶었다. 5년 전 가을, 천고마비의 계절이라며 어딘가 밖에 앉아 책을 펴 읽던 지구로 돌아가고 싶었다.

도망치듯 빠져나온 지구를 다시 그리워하게 한 것은, 내가 지구에서 그토록 동경하던 우주였다. 그리고 정말 별것 아닌 것들, 그것들이 지구를 그립게 했다. 우주에는 계절이 없고 어묵이 없고 바다가 없고 강이 없고 술이 없고 벤치가 없었다. 유일하게 책만 있었다.



[1] 영화 <Gravity>, Alfonso Cuarón, Warner Bros. Pictures (2013) 중;

“How about you, Ryan, you have anybody down there, looking up in the sky waiting for you to come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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