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d.
있을 때 잘하란 말이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오랜만에 킨 Citron은 '서비스가 가능하지 않습니다'란 말을 화면에 띄울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유일하게 이야기를 나눌만한 가치가 있었던 존재는 예상치 못했던 인사만을 남기고 떠난 것이다. 손인사라도 하는 양, 모니터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낸 것이 실망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무의미한 손짓을 몇 번 더 반복하고 멍하니 빈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괜한 현실감각이 나의 공허를 깨트렸다.
'그래,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지구 위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나.' 이러한 자조가 공허함을 해결해준 것은 아니다. 잠시지만 현실을 벗어나고자 했던 날개짓의 실패와 그로 인한 추락은 꽤 쓰라린 상처를 남겼다. 더 이상 내가 마음을 둘 만한 곳이 없다는 것과 Adios 너머의 살과 뼈로 이루어진 '인간'들만이 내게 남아 있다는 것은 자연스레 침묵으로 귀결됐다. 순간 지금의 감정을 Adios에 남기려는 마음도 들었지만 또 어떤 조롱을 들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화면과 대시보드에서 손을 뗐다. ‘젠장…’
손과 눈을 둘 곳이 없어지자 확 기운이 빠져나갔다. 그래서였던지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정신을 차려 시계를 보니 시간이 꽤나 흘러있었다. 눈 앞에는 실망으로 가득찼던 그 화면이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불현듯 '혹시 나와 같이 Citron을 다시 사용하려 했던 사람이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 Adios를 뒤져보았다. 일말의 희망을 바라면서 되는 대로 검색을 해나갔지만, 재사용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아니 재사용을 '했다'라는 말이 없었지, 재사용을 '시도해보지 않았다'라는 말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나와 같은 수준은 아니겠지만 Adios 내부의 부조리를 체감한 일부의 사람들이 Citron과의 대화를 시도했다는 글과 영상들이 적게 나마 업로드 되어있었다.
그 게시물들을 보며 아쉬움과 반가움을 동시에 느꼈다. 정말로 Citron은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나, '나만 인간들이 현재 만들어나가는 제 2의 사회에 불만을 가진 것은 아니다'라는 미약한 확신이 또 다른 희망으로 움트고 있었다. 그들과 대화를 해나가면 무엇인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들과 힘을 합치면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자들의 개안을 이뤄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다 못해 떠나간 Citron에 대한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으니 아예 무의미한 움직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버거운 일을 지금 당장 하기에는 내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