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5: 시선 a.

시선 a.

by 다온

20XX. 07. 02.


드디어 내일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J와 계속 회의(라고 하기엔 뭐한 대화)를 나눈 결과, 우리는 오래 전에 버려둔 한 우주 정거장을 소위 ‘만남의 광장’으로 정했다. 보아하니 예전 세대 사람들이 우주로 꽤나 많은 것들을 쏘아 올렸던데, 우주선과 함께 쏘아올린 인간들이 우주에서 살 수 있는 일종의 피난처를 함께 지어놨다더라. 이래서 지구가 이 모양이 된거다. 그렇게 자원낭비를 하며 이것저것 쏘아대니 우주에도 쓰레기, 지구에도 쓰레기가 쌓이지. 인류의 산물을 벗어나 우주로 왔는데 다시 인류의 것에 발을 디딘다고 생각하니 묘하면서도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만나는 장소도 정했고, J가 마무리한 항로변경 해킹 프로그램도 실행해봤는데 오늘 컨트롤보드를 보니 원래 화면에 그려진 항로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제대로 잘 가고 있는 걸 확인했다. 모든 게 순풍에 돛단 듯 굴러간다. 순풍에 돛단게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바다를 제대로 본 적도 없고, 심지어 바다에 쓰레기가 너무 많아서 배가 제대로 나아가지도 못할 것 같던데. 어쨌든 내일도 이렇게 순조로우면 좋겠다.


사실 떨려서? 두려워서? 잠이 안 온다. 그래서 일기를 쓰고 있는거다.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면 좀 마음이 가라앉을까봐. 그런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글이 산만한게 꼭 정신없는 머릿속을 펼쳐 발라놓은 듯 하다. 뭐가 두려운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항성’인 것 같다. 별 말고 저’항성’할때 ‘항성’. 그래 나도 알아. 왜 쓰면서 자문자답하는거야? 나는 수십년간 (이라고 말하니 매우 늙은 것 같지만) 살면서 타인과 많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손에 꼽는다. 뭐 이런 상황 속에서 꼭 우주 미아가 되지 않았더라도 어떻게 대화를 잘 하겠냐마는, 그 중에서도 나는 유별날 정도로 적을 것이다. 이렇게 평생을 살아오다가 갑자기 변한 환경에, 사람에, 새로운 시도까지. 나의 일부는 거부하는 반면 다른 일부는 새로운 변화에 찬사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만나면 무슨 대화를 하지? J와 아디오스로 했던 것처럼 말하면 되나?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J와의 대화는 무척이나 즐거웠다. 사실, 내가 그간 이렇게 즐거운 대화를 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걱정이 더욱 크다. 원래 기대가 클수록 실망감도 큰 법이라, 고대하던 날이 고대한 만큼이 아닐까봐 우려가 된다. 사람들이랑 무슨 대화를 해야될 지도 모르겠다. 사기당한 얘기를 꺼내면 그나마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공감은 처음 만나는 사람과 대화를 하기에 참으로 좋은 소재이나, 계속되는 공감은 무의미한 반응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머지않아 침묵이 올 뿐이다. ‘대화의 기술’ 같은 책이라도 곁에 있으면 좋으련만. 인간관계의 첫 걸음이 대화인 것을 그새 잊어서, 이전까지는 별 생각 없이 그저 사람이 그리운 마음 뿐이었는데, 막상 눈앞에 상황이 놓이니 불안하다.


일단 내일은 즐겁고도 힘든 하루가 될테니 푹 자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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