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6: 시선 a.

시선 a.

by 다온

20XX. 07. 03.


디데이. 오늘 나는 다른 인류를 만났다. 가는 길 내내 긴장돼서 손발이 굉장히 차가웠다. 창 너머의 시야가 무수한 별들에서 무너질 듯 허름한 거대한 기계로 바뀌자 실감이 났다.


아, 드디어 만나는구나.


창문 프레임이 우주 정거장을 다 담지 못할만큼 가까워지자 곧 철커덕-하고 우주선들이 도킹하는 소리가 들렸고, 나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곧 만나,

J가 보냈다. 나는 빠르게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려 심호흡하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문 밖으로 향했다.


나가서 만난 세상은 상상과 같으면서도 달랐다. 다들 어색하지만 반가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쭈뼛쭈뼛 서있었고, 중심에 서서 조율하는 사람이 J 인듯 보였다. J의 지휘 아래 H2P 로 연락이 닿은 서른 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둥그렇게 원으로 서서 긴장이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차례대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국적, 성별, 이름, 생김새 모든 것이 달랐다. 신기했다. 몇 달 간 눈으로 보던 것이 복붙한 듯 똑같이 생긴 별들과 무한한 허공에서 이리도 다채로운 존재들로 변화한 것에 놀라며 새삼 오늘이 인생에 있어서 큰 변곡점이라고 생각했다. 자기소개를 마친 후에는 옆과 그 옆들에 서있던 이들과 무리무리지어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사람들 앞에서 웃음을 지어 보이려니 얼굴 근육과 목이 매우 아팠다. 아이러니하게도, 살아있음을 느꼈다. 창고에 처박아둔 공구를 오랜만에 꺼내서 몇 번 끼익끼익하면 다시 잘 작동하는 이치랄까. 관계라는 근육이 조금은 삐걱댔지만 여전히 건재함을 확인함으로써 인간의 본질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 뿌듯했다.


대화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무슨 얘기를 할까 싶다가도, 워낙 다들 입이 근질근질했는지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여기 오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우주에는 왜 오게 되었는지. 물론 사기당한 이야기도 빠질 수 없었다. 대화를 하다 다른 무리에서 언성이 높아진다 싶으면 십중팔구는 ODT 이야기 중이었다. 뻔하지, 뭐. 나도 그랬으니. 감정을 격하게 표출해 본 적이 얼마만이었는지, 화를 내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더라. 일종의 카타르시스였으려나? 우주선에서 혼자 뉴스를 접했을 때는 그저 한숨과 나지막한 욕깃거리를 읊조릴 뿐이었는데, 우리를 비참하게 우주에 내버린 회사를 조롱하고, 큰 소리로 속시원하게 내뱉어버리니 훨씬 해소되는 듯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전에 말한 ‘항성’이 도지기 시작했다. 역시 인간은 변화에 취약한 동물인가보다. 지구에서의 경험보다도 사람을 한꺼번에 많이 만나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이 교류하려니 금세 이 상황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나도 아는 나의 나쁜 습관인 사소한 트집잡기가 여기까지 따라오다니. 본능인가보다. 대화에서 잠깐 빠져 혼자 이 상황에서 무엇이 나를 기분 나쁘게 만드는지 골똘히 분석을 하던 중, 무리에서 어떤 사람이 말했다. “우주에 혼자 있는거, 너무 외롭지 않았어요? 죽어버리는 줄 알았어요.”


‘우주’, 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백해무익한 불만일지를 덮고 머릿속을 빠져나왔다. 맞아, 혼자 있는 우주가 더 최악이었어. 조금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어도 혼자 있는 거보단 나은 것 같다.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기분이 안 좋아진다면 마음에 드는 점을 쥐어짜내서라도 생각해낼 수는 있는데, 혼자 있는 건, 글쎄, 몇 달간 장점을 쥐어짜내보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국 모두 기각되고 말았다.


대화는 빠르게 지구에 대한 그리움으로 번졌다. 이내 신원이 불분명한 누군가가 ‘지구에 돌아가는 것은 어떠냐’며 제안했다. H2P가 깔린 마당에 항로도 임의로 변경했는데, 이제 우주선 머리를 지구로 돌리는 것을 못할 것은 뭐냐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돌아가지 못 할 이유가 없잖아. 우리가 죄 지어서 추방당한 거도 아니고, 돌아가서 회사한테 뭐 혼나는 거도 아니고. 잘못은 회사가 했으니까. 사람들 모두 홀린 듯 지구에 갈 계획과, 지구에 가면 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실행력 좋은 누군가가 J에게 바로 다가가 지구에 갈 방법은 없냐며 자문을 구했다. 순식간에 우주 정거장 내 삼삼오오 모여있던 무리가 와해되고 지구에 돌아갈 사람들끼리 큰 뭉치로 모였다. 빠르게 변하는 분위기에 벙찐 채로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던 나는 우리 집단이 주축이었던 탓에 자동으로 지구 회귀 파가 되었다. 다들 처음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다른 기쁨에 차있었다. 집에 갈 수 있다는 희망적인 표정이었던 것 같다.


사실 그 이후에는 어제 어떻게 돌아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든 걸 기억하기에는 너무 인풋이 많은 하루였다. 확실하게 기억이 나는건, 나는 지구로 돌아가기로 했다는 것. 희미한 미래와 외로움이 묻어있는 우주보다는, 죽어가도 같이 있을 수 있는 지구를 택했다는 것. 우주로 가는 데 들인 비용이 조금 아깝기는 하지만, 내 삶의 가치관을 바꾸고, 사람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으니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한다. (너무 자기합리화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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