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b.
지금까지 하루를 치열하게 사용했다. 시계가 가리키는 바늘을 따라 주어진 24시간을 충실하게 이용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양의 식사를 하고 정해진 컵에 정해진 양의 물을 담아 자리로 향했다. 자리에 앉아 부수어야 할 자동 항법 장치의 프로그램을 뜯어보았다. 툭툭 건드려 보고, 학부생 때 가끔 될 대로 되라 자판을 건반처럼 두드리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식사 시간이 되면 식사를 했고, 운동했다. 운동을 하면서도 풀어야 할 숙제 같은 항법 장치의 구조를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H2P를 통해 동료가 된 다른 사람들도 치열하게 연구하고 있을 생각을 하면, 쉴 수 없었다. 오히려 기운이 솟았다.
이런 날이 반복될 때도, J는 간간이 H2P로 말을 걸었다. 우리는 짧은 문장에 많은 이야기를 담았다. 기술 한계만 없었어도 음성 전달로 했을 텐데, 영상까지 하면 어땠을까요. 항법 장치 연구는 어떻게 되어 가요. 오늘 밥은 이걸 먹었어요. 저와 같은 걸 먹었네요.
J의 목소리는 어떨까. 자기 전에는 이런 잡생각을 했다. H2P에서 깜빡이는 J 쪽 커서가 마치 그의 입술 같았다. 무슨 말을 할지 고르는 표정 같았다. 어딘가로 움직이는 그 우주선 안에서, 혼자 떨어져서도, H2P 속 J, 다른 해킹 동료들이 있으니 이상하게 든든했고 항법 장치 해체라는 목표가 생기자 더 괴로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내년 1월, 2월쯤을 기약하고 있었다. 항법 장치를 어르고 달랬다. 온통 까만 우주에서도 밤과 낮의 구분이 명확해졌다. 이러다 죽어도, 불과 한 달 전의 마음보다 백 배 나은 결말이 될 것이라 감히 생각했다. J는 이런 변화에 기뻐해 주었다.
!!!!!! J!!!!!!!!
무슨 일이에요?
성공했어요. 됐어요. 우리가 풀었어요.
...정말이에요?
네!!!!!!!!!!!! Adios에 배포용으로 만들게요. 사람들이 보고 따라 할 수 있게.
고생했어요. 정말 고생했어요.
너무 기뻐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영화 주인공의 물음에도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있어요. 기다리는 사람 아마 있을 거예요.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지구로 돌아갈래요.
<Space ODT_자동항법장치_해체_v.1.0.> 게시글 제목을 정해두고, 일반인들도 프로그램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문서를 작성했다. 지구에서 가져온 노래 중 가장 신나는 것들을 틀었다. 처음으로 우주선에서 두 발로 춤을 추었다. 지구에서도 안 하던 일을, 중력도 없는 곳에서 하려니 모양이 우스웠지만 그것대로 웃겨서 혼자 웃었다. 지구로 돌아가고 싶었다. 죽어도 지구를 목적지로 두다가 죽고 싶었다. 동경의 우주는 체감할 수 없는 감정의 속도를 느끼게 했다. 내게는 지구를 향하고 싶은 삶의 의지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우주를 가로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