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c.
이곳을 정리할 때도 된 것 같다. 원래 계획은 5년 정도 가족 없이 진정한 나를 아는 사람 없이 홀로 버티어 보는 것이었다. 그 계획을 세울 당시에는 인간에 염증이 난 상태였다. 매일 같이 같이 사는 가족들과 크고 작은 다툼을 반복했고, 그 다툼으로 인해 받은 스트레스를 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한 친구들 마저도 어느새 귀찮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 주변인들이 이곳을 떠나서 오블리비언으로 이주한다고 했을 때 난 그것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 싫증 나는 사람들을 따라가지 않고 그들에게서 벗어나서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리라고 마음먹었다. 부모님께 이곳에 5년 정도 있다가 오블리비언으로 이동하겠다고 말씀드렸고, 생각 외로 부모님께서는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다. 어차피 오블리비언은 우리 가족이 대부분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고 나는 입주하고 싶은 때 아무 때나 들어와서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 6개월을 정말 후련했고 날아다닐 것 같았다. 물론 모두와 연락을 아예 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간간히 화상통화나 메신저로 안부와 필요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그렇지만 이야기가 크게 길어지지 않았고 메신저로 이야기할 때는 내가 연락을 하고 싶을 때만 해도 된다는 장점이 있었다. 즉, 불필요한 감정소비를 하지 않아도 되고 플러고를 꼽고 뽑듯이 연락을 꼭 필요하거나 원할 때만 해도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나고 점점 이와 같이 통신 수단으로만 사람들과 연락하는 기간이 길어지자 슬슬 외로움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연락을 좀 자주 하면 해결될 줄 알고 전보다는 사람들과 더 자주, 한 번 연락할 때 길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내가 그랬듯 연락을 받는 상대방은 자신이 상태에 따라 나와의 대화에 집중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고 비록 겉으로는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듯 하는 것 같지만 내 이야기를 전혀 듣고 있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다.
허공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누구와도 연락이 잘 닿지 않을 때는 전에 꾸었던 꿈속에 나타난 망망대해를 정처 없이 표류하는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을 아예 하지 않던 때보다는 기분이 훨씬 나아졌지만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의 크기가 상당했다. 이 부정적인 감정의 결정적인 기폭제가 된 것이 바로 가장 최근의 아주 어이없는,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상담이었다. 끝나고 나서 나는 이제는 오블리비언으로 갈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무엇보다 내가 사람이 정말 필요한,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얻는 귀찮음과 불필요한 감정 소비도 분명히 경험하지만 그러한 비용에도 불구하고 그런 관계들 속에서 일어나는 소통으로 숨통이 트이는 사람이라는 것을 배웠다. 부모님과 오블리비언에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주었고 돌아갈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