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6: 시선 d.

시선 d.

by 다온

20xx.5.18.


폭로니 뭐니 하던 그 사람에게 연락을 취한 지 벌써 일주일 아무런 연락도 없다. 영상에서 호소하던 애절한 목소리는 다 연기였던 건가? 봐주는 사람도 별로 없는 주제에 찬 밥, 더운 밥 가리는 꼴이란.


20XX.5.19.


오늘 다시 연락을 취했다. 내가 얼마나 본인 영상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진실을 밝히려는 태도에 반했는지 어필하기 위해 갖은 거짓말을 총동원했다. 자기가 무슨 프로젝트 연구원이었니, 박사였니 하는 걸 보아하니 어지간한 아첨으론 안 될 것 같아 더 노골적인 말을 지어내느라 고생 깨나 했다. 콧대 높은 인간들은 세속적이지 않은 척 해도 실은 자기를 치켜세워주는 말에는 녹아내리니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만일 이것으로도 반응이 없다면 그 자는 내 Adios을 골려먹었던 인간이었거나 나를 차단한 인간일 것이다.


20xx.5.22.


기다린지 사흘 만에 연락이 닿았다. '얼굴을 한 번 봤으면 좋겠다'는 한 마디와 약속 시간만을 남긴 단촐한 답신이었지만 괜찮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알게 되고, 살아있는 인간과 대화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 만남은 적지 않은 가치가 있다. 특히 말이 통할만한 상대를 만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나. 어쩌면 진실을 폭로하니 어쩌니 하는 것 보다 네트워크 상의 멍청이들과 작별하는 것이 나에게 더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황페화된 환경보다 나를 더 괴롭혔던 것은 사람다운 사람과 만나지 못했던 것이니 말이다.


약속한 시간이 다 되자 아주 오랜만에 긴장감을 느꼈다. 저번에 Adios에 일기를 업로드 했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나 혼자만 떠드는 것도 아니고, 남이 일방적으로 날 평가하는 것도 아닌 쌍방의 대화라니. 과연 그 자는 무슨 말을 할까. 어떤 정보를 가지고 나를 놀래킬까. 그 자가 말했던 것들이 정말로 사실일까?




내부 고발자와의 대화


: 당신이 '기밀 문서 폭로! 현실과 진실!'이란 영상의 그 인물이 맞습니까?


내부 고발자 (이하 고) : 그렇소. 선생께선 제가 올린 영상을 상당히 감명 깊게 보신 모양이시더군.


: 그렇긴 한데... 그 쪽이 누구인지 소개부터 하는게 순서가 맞지 않습니까? 얼굴을 봤으면 좋겠다 하시더니 가면을 쓰고 등장하셨군요.


: 아, 이거 말이오. 어쩔 수 없지 않겠소. 내부 기밀을 터트리는 건데 나의 신변 보호를 위해서 이 정도 장치를 하는 것 쯤이야. 선생께서도 이해해 주시기를 바라오. 참고로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 목소리도 제 본래의 목소리가 아닌 변조된 것이오. (이것 참... 이런 것까지 설명해야 한다니)


: (이해해 주시기를 바라오 같은 소리하고 있네) 크흠, 뭐 저야 별 볼 일 없는 위인이니 그 정도의 치밀함이 필요하지 않아서 말이죠. 제가 결례를 범했군요. 죄송합니다. 다만 본인을 소개하실 적에 '박사', '연구원'과 같은 표현을 쓰시길래 뭐를 연구하셨던 분인지 궁금해서 그랬던 것이니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그건 차차 아시게 될 것이니 걱정할 바가 아닙니다. 분명 선생께서도 궁금하시겠지. 기밀이니 폭로니 하는 것들이 튀어나온 맥락을 모르실테니까. 아무튼 저를 도와주고 싶다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인지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지?


: 아 흠, 크흠 그야 물론이죠. 저는 박사님께서 진실을 밝히시고자 하신다는 것에 크게 감화되었습니다. 제 Adios를 들어가 보시면 알겠지만 저도 현 상황에 대해서 석연치 않은 점이 있거든요. 모르긴 몰라도 제 예감이 무엇인가 은폐되고 있다는 것을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박사님의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주 놀랍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일 정도로 말이죠.


: 뭐 아직까지 제 Adios가 큰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긴 합니다만, 시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전후 설명없이 환경이 오염됐으니 집에 쳐 박혀있으라는 말을 사람들이 얼마나 듣고 있겠소?


: 맞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라는 게 자기 멋대로인 게 문제 아니겠습니까. 제가 그것을 확 줄여드리고 싶다... 이겁니다.


: 선생께서 무슨 수로 그 시간을 줄여준다는 겁니까. 게다가 뭣 때문에 그런 수고스러운 일을 맡으시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소만.


: 우선 저도 진실을 밝히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무슨 수'라는 건 매우 간단합니다. 박사님의 그 고지식한 방법만 뜯어 고치면... 아니지 조금 수정하면 됩니다. 요 만큼.


: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보시오.


: 여태 하시던 1부터 100까지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1000, 10000을 때려박자는 겁니다. 봐온 바로는 박사님께서는 논리와 순서 같은 것을 매우 중요시 여기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도 좋지만 결국에 박사님은 사람들이 따라오길 바라는 거 아닙니까? 그것은 설득으로 될 것이 아닙니다. 확 끌어오는 뭔가가 있어야 '그렇구나'하지 않겠습니까. 하나 하나 짚고 넘어가는 식으론 아마 다시 지구에서 풀이 나올 때까지 한다 쳐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 당신... 아니 선생께선 그럼 어떻게 하셨으면 좋겠습니까. 아까 말씀하신 대로 선생 Adios에 들어가보니 그렇게 많은 접속자가 왔다간 것도 아니더만.


: (뭣!...) 음…. 숫자는 거짓말을 못하니 저도 그 점은 인정합니다만 나름 깨달은 바가 있다 이겁니다. 자랑스럽지 않지만 제 Adios를 보셨으니 아시겠죠. 사람들은 놀고 싶어하지, 공부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말하고 싶어하지, 듣고 싶어하지 않아하고 즐기고 싶어하지, 고민하고 싶어하지 않아 합니다. 제 진심이 담긴 글에 그 따위 반응을 하는 것 보면 뻔하지 않습니까? ‘진지한 것을 견디지 못한다’는 바로 그 점을 이용하면 됩니다. 박사님의 그 '기밀정보'를 정보가 아닌 하나의 유희거리로 탈바꿈해 올려보자 이겁니다. 거기에 적당히 부채질만 해주면 활활 타오르지 않겠습니까?


: 틀린 말은 아니군요. 저도 동감하는 바입니다만, 선생도 아시다시피 현재 제 영상을 보는 이들의 수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선 태워봐야 성냥 불 수준일텐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 박사님은 정말 답답하신 분이시군요. Adios가 곧 세계고, 세계가 곧 Adios인 오늘날에는 입소문보다는 손소문 아니겠습니까. 일단 현재의 몇 몇을 공략하면 알아서 풀릴 겁니다. 박사님의 정보가 사실이라면 말이죠.


: 내가 가진 이 정보가 사실임엔 틀림없소!


: 그거면 됐습니다. 정 뭐하면 방문자야 사면 그만입니다. 방문자도 숫자고, 돈도 숫자니 서로 교환하는 것 쯤이야 일도 아니죠. 영상들을 보니 집에 들여놓으신 것들이 값 깨나 하는 것들이던데, 그 정도 투자야 대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 크흠...그렇소, 그쪽이 맞는 말을 하는 군.


: 자 그러면 어느 정도 감은 잡으셨을테니깐 제 요구를 말씀드려도 되겠죠?


: 무엇이오.


: 환경오염에 관한 것 말인데... 영상을 보니 '실제로는 그렇게 심하지 않다'고 하셨더군요. 그게 사실입니까? 아무래도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가질 만한 요소이기도 하고, 저도 궁금해서 말이죠.


: 맞소. 물론 처음 오염이 심화되었을 때는 아주 심각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은 그 정도로 심하진 않소. 적당한 보호 장비만 있다면 충분히 야외에서의 활동이 가능한 수준이오.


: 그러면 지금 연합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단 것인데 그러는 이유가 뭡니까? 이 소란을 피우면서까지 사람들을 다 집에 쳐 박아놓다니


: 그것은 나중에 설명을 드리겠소. 지금 보니 내 말을 못 믿는 모양인데 내가 증거를 보여드리리다.


: 오, 밖으로 나가시려는 건가요?


: 선생 댁의 위치를 보내보시오. 내가 보호 장비를 그쪽으로 보낼테니 직접 밖으로 나가보시고 황폐화 된 지구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정말 '정부'에서 말한 대로 즉사하는지를 시험해보시오. 화면 너머에서 이러니 저러니 해봤자 의심만 심해질 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진짜' 아니겠소. 진짜임을 증명하려면 몸소 느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니 사양하지 마시고 시도해보시오. 그렇게 한다면 나는 선생의 도전정신을, 선생은 나의 정보를 믿을 수 있지 않겠소.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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