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에 나가는 것이 쉽지 않은 요즘, 밀린 예능을 몰아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날이 부쩍 늘었다. 하루는 ‘놀면 뭐하니?’를 정주행 하던 중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라섹’은 라면을 끓이고, ‘죽밥 유선생’은 진미채를 버무리고, ‘닭터유’는 치킨을 튀긴다. 그런데 어찌 보면 모두 특별히 눈에 띌 것이 없는, 참 평범한 음식들이다. 많고 많은 선택지 중에서 왜 하필 라면과 진미채, 치킨이었을까?
사실 이유는 간단하다.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니까. 유느님과 치느님은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니까. 라면은 한국인의 소울푸드고, 진미채는 국민 밑반찬이니까. 더하자면, 요리 실력자가 아닌 유재석이 금방 배워 만들어내기에 어렵지 않은 음식이니까.
김태호 PD피셜 유느님과 치느님의 공통점은?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한다는 것. (캡처-MBC 제공)
그런데 그게 다는 아닌 듯하다.
‘놀면 뭐하니?’는 참 섬세한 프로그램이다. 유산슬, 유고스타, 유르페우스 프로젝트는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예술계의 숨은 보석들을 소개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들였다. 출연진 각자가 가진 인간적인 매력을 세밀하게 분석해서 드러낸 결과 모두가 대중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방구석 콘서트에서는 소외되는 장르 없이 다양한 분야의 음악인들을 초청해서 무대를 구성하는 섬세함이 돋보였다. 특히 ‘맘마미아!’ 공연에서는 앙상블 배우들 모두를 빛나는 작품의 주역으로 소개한 연출이 참 인상적이었다. 제작진이 사람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얼마나 세심하게 준비한 무대인지가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이처럼 치밀한 기획과 연출의 ‘놀면 뭐하니?’가 시청자에게 익숙한 음식들을 연달아 등장시킨 데에는 분명 더 깊은 이유가 있었을 듯하다. 다시 한번 묻게 된다. 왜 하필, 라면과 진미채, 치킨이었을까?
왜 하필 다른 무엇도 아닌 진미채였을까 (캡처-MBC 제공)
맛깔나는 수다는 ‘아는 맛’에서 나온다
예능 일인자가 세계 각국에서 공수한 귀한 식재료로 만든 산해진미를 대접했다면 더 큰 재미와 감동이 느껴졌을까? 아닐 것 같다. ‘아는 맛이 무섭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라면 한 그릇의 감동을 너무나 잘 알기에 우리는 ‘라섹’의 ‘인생라면’을 맛보는 손님들의 행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놀면 뭐하지?’에는 낯설고 어려운 소재가 등장했을 때에 대중이 느낄 수 있는 심리적 거리감이 존재하지 않는다. 위로와 응원을 전하는 소재로 쓰이기에 시청자의 눈높이에 맞춘 소탈하고 정겨운 음식인 라면과 진미채, 치킨은 부족함이 없는 메뉴였다.
먹는 모습만 봐도 침이 고이는, '모두가 아는 그 맛' (캡처-MBC 제공)
선한 영향력? 야 너두 할 수 있어
‘놀면 뭐하니?’는 음식을 매개로 시청자들도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의 일원이 되게 한다. ‘죽밥 유선생’의 진미채와 콩자반은 유재석의 손을 빌리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화면 밖 시청자들이 탄생시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밑반찬에는 라이브 방송에 참여한 시청자들의 추억과 보람이 담기게 된다. 필자는 ‘닭터유’ 편을 보다 윤기가 흐르는 치명적인 양념치킨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동네 치킨집에 전화를 걸었다. 갓 튀긴 닭을 건네는 ‘닭터유’를 보며 침체된 치킨 업계를 살리는 좋은 취지에 나도 동참한다는 뿌듯함이 더해지니 항상 먹던 치킨이 유달리 더 맛있게 느껴졌다.
<놀면 뭐하니?>가 낳고 시청자들이 기른 '죽밥 유선생' (캡처-MBC 제공)
더불어, 제작진은 다재다능한 고정 출연자 유재석을 알차게(?) 활용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아이템이 바뀔 때마다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들을 등장시킨다. ‘놀면 뭐하니?’의 기획이 유재석 한 사람의 노력으로 일궈낸 선행을 소비하는 데에 머물렀다면 시청자의 호기심은 훨씬 빨리 식었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연결고리를 통해 프로그램의 세계관이 계속 확장되기 때문에 그 선한 영향력은 새로운 출연진들의 등장과 함께 끊임없이 뻗어나간다.
제작진이 ‘닭터유’ 편에 등장한 ‘식빵언니’ 김연경 선수와 ‘둘째이모 김다비’ 김신영을 어떻게 소개했는가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일이 없어 쉬고 있던 청년, 백숙집 운영 경험을 살려 ‘닭터유’를 도우러 와준 경력직 이모라는 수식어를 붙여 친근한 이웃의 이미지를 부여했다. 비교적 요리 과정이 단순한 치킨이라는 소재를 다루었기 때문에 새로운 출연진의 요리 실력이나 관여도를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참여의 장벽을 낮춰 누구든 함께 할 수 있는 위로와 응원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놀면 뭐하니?>의 세계관에는 한계가 없다 (캡처-MBC 제공)
사실, 좋은 사람들과는 뭘 먹어도 맛있다
‘놀면 뭐하니’ 속 음식은 주제가 아닌 매개다. 음식의 맛보다 중요한 것은 배우고, 요리하고, 같이 나누어 먹는 과정에 담겨 있는 맛깔난 이야기들이다. 핵심은 한 그릇의 따뜻한 진심이 전해지는 그 아름다운 ‘순간’에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반짝이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인 이상, 사실 무엇을 요리하느냐는 애초에 크게 중요치 않았다.
'무엇을' 하는지보다 '누구와' 하는지가 중요한 때가 있다 (캡처-MBC 제공)
지금껏 ‘놀면 뭐하지?’는 예능이 선사할 수 있는 웃음과 감동으로 세상에 위로와 응원을 전하는 데에 주목해 왔다. 그런 프로그램의 성격을 드러내기에 대중에게 친숙한 음식을 소재로 활용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세계관의 무한한 확장 가능성이 ‘놀면 뭐하니?’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인만큼,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음식이 누구와 함께 등장할지를 기다리는 것도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감상하는 색다른 묘미가 될 것 같다.